# 신입사원 최원석(30‧가명) 씨는 최근 휴가지로 일본 오사카를 다녀왔다. 범국민적으로 ‘일본 불매운동’이 한창인걸 알고 있었지만, 사실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한다. 그는 “짧은 휴가에 전부터 계획을 해왔던 터라, 취소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면서 “직장 동료나 상사에겐 눈치가 보여, 그냥 제주도를 며칠 다녀왔다고 둘러댔다”라고 털어놨다.
# 평소 유니클로에서 옷을 구입하던 대학생 한금진(25‧가명) 씨도 ‘샤이재팬’이다. 불매운동 초기까지만 해도 집 근처의 유니클로 매장을 종종 들렀으나, SNS에 ‘유파라치’ 등이 등장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고 했다. 대신 온라인으로 사볼까도 했지만, 주위서 옷 자체를 알아볼까, 이마저도 포기했다. 대신 속옷 등의 내의류를 구입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도 이를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일본 제품을 소비해도 알리지 않는 ‘샤이재팬’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광복절을 코앞에 두고 반일감정이 날로 심화하는 데다, ‘일본 불매운동’이 이제는 범국민적 차원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을 ‘소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간,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 한다.
12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일본 불매운동 이후 국내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여행객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7월말~ 8월초는 통상적인 여름휴가 성수기로 꼽히지만 오히려 여행객이 줄고 있는 것이다. 일본 불매운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 해석이다. 항공사들도 항공편을 줄이는 등 비상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는 일본이다. 한국관광공사의 '국민해외관광객 주요 행선지 통계'에 따르면, 일본 불매 운동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 6월, 무려 61만1900명이 일본에 입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6월 전체 63개국 한국인 입국자 141만5209명 중 약 43%에 달하는 수치다. ‘샤이재팬’ 여행족이 아직까지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보통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페이스북 등 SNS에 사진을 남기기 마련이지만, 이들은 주위 시선에 대한 불안으로 이를 꾹꾹 감춘다. 앞서 최씨와 일본 여행에 동행한 동료 역시 "일본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카카오톡 프사(프로필 사진)이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면서 "보통 여행후 지인들에게 줄 선물도 사곤 하는데, 이번엔 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비단 여행업계 뿐만 아니다. 국내 일본 제품과 문화 소비에 있어서도 ‘샤이재팬’이 나타나고 있다. 반일감정으로 ‘일본’ 자체가 금기시되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일례로 최근에는 유니클로 매장을 감시하는 ‘유니클로 단속반’이 SNS상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유니클로 매장을 감시하고 사진을 찍어 온라인상에 올리는 ‘유파라치’로 불린다.
앞서 한씨는 “유니클로 매장에서 누군가가 내 사진을 찍어 올린다고 생각하니, 갈 생각이 싹 사라졌다”면서 “(유니클로) 옷을 입고 돌아다니다 학교나 모임에서 괜히 눈총을 받는 것이 아닌지도 걱정스럽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러다간 일식집이나 일본 영화를 보는 것 자체도 지탄을 받는 일이 될까 우려스럽다”라고 걱정했다.
샤이재팬 현상은 특히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와 결합해 암암리 늘고 있다. 집단주의는 나 자신 보다는 주위의 반응을 우선에 두는 것이다. 이런 ‘샤이재팬’을 놓고 여론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국가적 비상상황인 만큼, 일본 불매운동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의견과 불매운동이 국민들 사이서 자발적으로 시작한 만큼, 강요는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겉으로 알리지는 않지만, 일본 제품을 구매하는 사례가 꽤 보인다”면서 “유니클로 에어리즘 같은 내의류는 아직도 상당한 소비층이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귀띔했다. 이어 “일본 불매운동이 고조되는 만큼, 강요 분위기도 만만찮게 형성되고 있어 국내의 샤이재팬 현상은 당분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