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원도급자에 대한 건설규제가 대폭 늘었다. 이를 두고 업계 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원도급자만을 대상으로 규제를 가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산업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건설현장에서의 사고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늘어온 만큼 이같은 규제는 결국 업계의 자업자득이란 것이다.
또 규제가 많이 가해지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은 전혀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사회와 업계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19일 건설산업연구원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국토교통부 소관 규제 1895개 중 건설사업자·건축주 등에 대한 직접적 건설규제만 342개다. 건산연 측은 전날 ‘건설산업 규제의 상호협력적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고 국내의 산업재해 예방 대책이 원도급자 규제와 처벌 강화 위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그간 건설규제의 단순 양적 완화 중심의 정책에서 더 나은 규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산업 간 협력체계 구축과 중·장기적 규제개혁 로드맵을 기반으로 규제개혁의 일관된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원도급자를 중심으로 정부의 규제가 증가한 데에는 그만큼 건설업계 내 사고·사망 발생수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쉽게 말해 앞서 사고가 많이 났으니까 정부 차원에서 규제가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본지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비교 조사해본 결과 ▲2017년 1957명 ▲2018년 2142명 ▲2019년 6월 기준 1115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건설업 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각각 579명, 570명, 279명으로, 사망만인율은 1.90%, 1.94%, 1.18% 수준이었다. 사망만인율이란 1만명의 근로자당 사고로 인해 사망한 비율을 의미한다.
올해는 아직 통계가 6월까지 밖에 등재돼 있지 않아 지난해 같은 기간을 놓고 비교해봤다. 그 결과 올 상반기 건설업 사망자 수는 지난해 동기(270명)보다 9명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7~9월 이미 발생한 사고도 많은 만큼 하반기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간단히 살펴보면 대우건설은 올 초부터 지난달까지 건설 현장에서 6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난해 한 해 사망자 수(3명)보다 2배 많고, 10대 건설사 중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 7월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은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배수펌프장’ 건설현장에서는 근로자 3명이 사망했다. 최근에는 서희건설이 시공을 맡은 ‘속초 서희스타힐스더베이’ 주상복합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15층 높이에서 작업용 승강기가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또 지난해 통계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업종에서 산업재해가 감소한 것과 달리 건설업은 오히려 재해율과 사망자 수가 증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해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살펴보면 서비스업(2만9692명), 건설업(2만6570명), 제조업(2만6142명), 운수·창고·통신업(4114명), 광업(1534명) 등의 순으로 많았다. 대부분 업종에서 재해율이 감소한데 반해 건설업(0.75%→0.84%)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현 정부의 원도급자 중심 규제가 강해진 배경에는 이같은 사고들이 누적돼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 건설업은 개발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왔기 때문에, 사고예방 등 안전에 관한 노력은 부족했다”며 “규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제도적 보완과 함께 업계 내 자정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업에서 유독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타 산업군은 안전시설 등이 충분히 갖춰진 상태에서 업무가 진행되는데, 건설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업이다 보니까 시설을 갖추고 작업을 진행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정부의 규제가 건설업계와 일반 국민들 중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규제는 많이 가해지는 듯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어느 것도 없다는 설명이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참여정부 시절에도 규제는 많았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모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규제들이 아닌 곁다리 규제들뿐이다”라며 “근본적인 문제인 직접시공제, 적정임금제 등 어느 것 하나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직접시공 등이 이뤄지면 사고 발생도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