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종사자 트라우마 관리, 예방이 먼저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종사자 트라우마 관리, 예방이 먼저

기사승인 2019-10-13 04:00:00

지난달 국내에서 최초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 이후 한달 여 동안 14번째 확진 지역이 나오면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이로 인해 확잔 판정을 받은 농장에 대한 살처분 돼지 수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살처분을 담당하는 인력에 대한 트라우마 예방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다.

지난 9월17일 파주를 시작으로 경기 북부 지역에서 확산 범위가 점차 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확진 사례는 10일 기준 총 14건이다. 현재 발생 원인과 감염경로는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야생멧돼지 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북한으로부터의 유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의 모든 돼지를 살처분 처리하고 있다. 특히 강화군의 경우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관내 모든 양돈농가 4만3602마리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이 진행되기도 했다.

앞서 국내에서 구제역이 확산됐던 2010년~2011년 당시 국내에서 350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된 바 있다. 돼지 가격이 2배 이상 폭등했고 유통 물량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과거 구제역 사태를 떠올렸을 때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지 못한다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방역 당국은 일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지역 안의 모든 돼지를 없애는 초강력 대응을 택했다. 돼지과 동물만 감염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구제역과 달리 공기로 전염되진 않지만, 백신과 치료제가 없고 치사율이 100%에 달해 발병 시 살처분 외엔 방법이 없다.

방역 당국은 파주·김포 지역 발생농장 반경 3㎞ 밖의 돼지도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돼지를 없앤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살처분이 지나간 자리에는 칼자루를 쥔 자들의 트라우마가 남는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가축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과 공중방역 수의사 268명의 심리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 기준을 넘겼다. 중증 우울증이 의심되는 응답자도 23.1%에 달했다. 심지어 2011년 구제역 발생 당시에는 가축 살처분에 투입된 축협 직원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1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현재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파주·연천·김포·강화 등 4곳, 27개 농가 돼지 5만5천여마리 살처분 매몰 작업에 투입된 공무원, 군경, 용역직원 등 인력만 연인원 1343명에 달한다.

많은 인력들이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작업에 투입된 가운데, 이들에게 발병되는 트라우마를 관리하기 위한 주체와 방식은 다양하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시로부터 살처분에 투입된 사람들의 연락처를 받아 800명에게 센터를 방문하게끔 일괄적으로 문자를 발송을 한다. 문자를 보내고 나서 일상생활에 적응을 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좀 둔 후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상담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한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따르면 현재 1명을 직접 방문해 상담 완료 했으며 나머지 5명의 축산 농민들은 전화로 상담을 진행 중이다.   

파주시 보건소 역시 종사자 두 명의 트라우마를 관리했다고 밝혔다.

보건소 측은 "한 분은 농장 주인분이었는데 살처분 모습을 직접 보고 우울증과 불면증 진단을 받아서 동국대학교 대학병원과 연결해드렸다"며 "이후 불면증, 수면제를 처방해드리고 전화 상담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다른 한 분은 살처분장 초소에서 근무하시는 분이었다. 비명소리와 울음소리 등 환각이 들린다고 해서 상담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살처분에 참여한 인력 수에 비해 상담을 받은 사람의 수는 턱없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파주시 보건소 측은 "트라우마가 당장 발병되는 것이 아니라 2~3주 정도가 지나야 발병이 되기 떄문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은 것"이라며 "아직 살처분이 진행 중이라 발병이 안 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살처분 참여자들이 외국인인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종교적으로 돼지를 악마로 생각한다. 소를 우상시하고 돼지를 천시 하기 때문에 살처분하는 것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트라우마가)발병이 안 돼서"라며 "추후에 돼서야 증상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따라서 트라우마가 발병되기 전 예방법의 중요성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트라우마가 발병된 후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최선의 방법은 살처분 후 2~3주의 남은 기간 동안 이후 발생될 트라우마가 발병하는 것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발생 된 트라우마에 대한 관리는 탄탄한 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애초 발생 될 트라우마를 막는 예방적 측면에서의 대비는 비교적으로 미흡한 상태다. 

국가트라우마센터의 경우 살처분 인력들에게 필요한 교육 진행과 기술적 지원, 자원 지원 서비스가 준비돼있다고 밝혔다. 또 고위험군의 사례가 발생했을 경우 심층적으로 심리지원이 필요할 경우 자체 프로그램으로 관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돼지열병과 관련된 직접적인 서비스 개입은 없었으며 이에 내부 진행 프로그램 홍보를 통해 지자체에서 의뢰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살처분 후 트라우마 발병이 느지막이 나타남에 따라 센터의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된 예시다. 이에 국가트라우마센터는 트라우마 발병 후의 대처와 별도로 발병 자체를 막기 위한 예방 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들은 우선 기본적으로 살처분 인력들에게 별도의 심리치료가 있다는 것을 안내한 후 예방 차원에서 트라우마 증상 등에 대해 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교육 중 정상화를 강조하며 트라우마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고 정신이 이상해서 나타나는 게 아님을 교육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임을 인지시킨다. 또 이러한 교육을 위해 전국적으로 정신 관련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며 이들이 심리적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수 있게 훈련시킨다.  

정신건강복지센터 또한 이와 비슷한 예방 교육을 실시한다. 그들은 살처분 현장 투입 현장에 직접 방문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 불안, 즉 재난 상황에 대한 심리교육을 한다. 또 상황을 겪고 나서 나타날 수 있는 식욕부진 등의 부작용을 설명함으로써 1차 접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지영 인턴 기자 circl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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