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제주 영리병원 처리 문제를 촉구하는 노동계와의 면담을 거부하는 등 사실상 정권 내 병원 처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 허가를 해준 보건복지부가 “개설권자는 제주특별자치도”라며 이 문제에 손을 뗀 것이 이러한 윗선의 ‘침묵’에 따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은 지난 4월17일 도의 개설허가 취소 결정 이후 방치 상태에 놓여 있는 병원 처리와 관련, 청와대에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다. 면담 과정을 주도했던 보건의료노조 박민숙 부위원장은 “침례병원 등의 사례처럼 녹지병원의 공공병원 전환 등 여러 안을 논의코자 했지만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전 정권의 일이고 제주도가 한 일이니 제주도가 주워 담아야 한다”며 완강한 거절 의사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해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실 관계자는 “청와대나 중앙 정부가 개입할 권한이 없다”며 “개설 허가와 취소 모두 제주도가 한 일로 청와대에 질문하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도 “병원을 열지 말지 여부는 제주도가 판단했다”고 선을 그었다.
이렇듯 청와대와 복지부 모두 제주도의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책임의 주체로 지목된 제주도는 녹지병원 측이 제기한 행정소송 대응 외에 후속 조치 등과 관련해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도 보건건강위생과 관계자는 “올 초 상황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라고만 말했다.
최근 제주 녹지국제병원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것은 지난달 녹지병원 측이 국내 건설사에 공사대금 1218억원을 완납한 것과 무관치 않다. 본지가 입수한 녹지병원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병원이 다시 녹지 소유로 돌아왔다. 대우건설·포스코건설·한화건설에서 지난 2017년 제기한 소송에 따른 서울중앙지법의 가압류 결정이 공사대금 완납으로 풀린 상태다.
녹지 측은 지난 3월 청문에서 “개원 지체로 인해 850억원을 손해 봤고, (외국인 진료만 가능한 조건부 허가로) 한중 FTA에 따른 외국 투자자의 적법한 투자기대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었다. 이번 공사대금 완납이 향후 녹지가 제주도를 상대로 하는 제기할 수도 있는 손해배상 소송 및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 제도를 통한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된다. 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의 헬스케어타운 공사 재개와 맞물려 병원 재개원을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한다.
박민숙 부위원장은 “허용된 영리병원에 대한 취소와 더불어 공공의료를 확대하는 방안을 빨리 모색해야 한다”며 “청와대·복지부·제주도·녹지병원·JDC가 함께 공공병원으로의 전환 등 후속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복지부는 지난 2015년 제주도가 사업계획서 검토를 요청했을 때 사업 적합을 통보한 바 있다. 공개된 사업승인서와 2015년 5월 일명 ‘안종범 수첩’에 ‘제주도 외국인 영리병원, 국내 자본 이동’이라고 적혀 있었던 사실, 관련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안 전 수석과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영리병원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복지부가 ‘윗선’의 지시에 따른 ‘졸속’ 사업 승인을 했다는 비판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법에 따라 판단했을 뿐이며, 부에서 진행할 사항도 아니고 이후 상황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제주 영리병원 내국인 의료행위 제한·의료영리화 방지법’을 발의했던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은 “영리병원 개설은 의료비 지출 증가를 비롯해 보건의료 양극화 심화, 의료보험체계 붕괴 등 국내 의료체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며 “청와대와 복지부는 사회적 파장이 큰 영리병원 문제를 제주도에만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의료분야에 있어서 경제적 논리보다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라는 공익적 가치가 최우선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