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1600만 명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과 시청률 20%를 넘긴 드라마 ‘열혈사제’에 출연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배우 이하늬가 영화 ‘블랙머니’로 돌아왔다. 형사와 검사에 이어 이번엔 변호사다.
‘블랙머니’는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6’ 등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이 7년 만에 내놓는 영화로,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해 2012년 하나금융에 팔고 한국을 떠난 헐값 매각 사건을 다룬다. 이하늬는 ‘블랙머니’에서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 역을 맡아, 전작에서 보여준 웃음기 가득한 모습을 지우고 새로운 얼굴로 대중 앞에 섰다.
최근 서울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하늬는 정지영 감독, 배우 조진웅과 함께한다는 점이 끌려 ‘블랙머니’를 선택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두 사람의 이름이 이하늬에게 “무조건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했던 시나리오도 한몫했다. 이하늬는 ‘블랙머니’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앉은 자리에서 서너 번 반복해 읽을 만큼 흡입력과 완성도가 뛰어났다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과 조진웅 선배가 함께하는 작업 환경이라면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뭐라도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조진웅 선배와 꼭 한 번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는데, 적당한 시기에 기회가 온 것 같아요. 정지영 감독과 함께 촬영하며 작업자의 태도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고, 제 모습을 반추하게 됐어요. 정 감독님은 촬영하면서 매 테이크마다 연기자에게 뛰어와서 말씀하세요. 제 안에도 저런 열정이 있는지 돌아보게 됐죠.”
이하늬가 이번 작품에서 연기하는 김나리는 뉴욕을 무대로 변호사 일을 하는 인물이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매사가 분명하고 이성적이다. 이하늬는 조진웅이 연기한 양민혁 캐릭터를 불꽃에, 김나리를 얼음판에 비유해 설명했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며 전작에서 보여준 에너지를 변환에 신경을 썼어요. 절제하고 응축된 에너지 표현에 공을 들였죠. 뉴욕에서 일했던 김나리가 내뱉는 일상어에서 그의 성격이나 경력이 명료하게 묻어나길 바랐어요. 영어도 한국에서 쓰는 것 아니라 월가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하는 쓰는 설정이라서, 최대한 그 흐름에 맞춰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고요.”
올해 이하늬는 배우로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달아 좋은 성적을 거두며, 연기자로서 완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대단했던 올해의 성과에 관한 말을 꺼내며 비결을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잘해서 잘 된 것이 아니란 걸 이제는 정말 알아요. ‘극한직업’이나 ‘열혈사제’는 그저 선물처럼 온 작품이에요. 그전에 했던 드라마 ‘역적’도 운명처럼 찾아왔고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작품도 운명처럼 만나요. ‘극한직업’을 작업하면서 작품의 성공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루하루 살면서 얻는 보람이나 연기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이 삶을 채우는 것이지, 벼락같은 선물만을 바라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불행할 것 같아요. 열정을 갖고 임하되, 누군가에게 증명하듯이 하는 것보다 스스로 부끄러움 없는 연기를 하는 게 먼저죠.”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