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까보니, ‘세금주도성장’

소득주도성장 까보니, ‘세금주도성장’

줬다 뺏는 정부, 비율로만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가계경제

기사승인 2019-11-26 06:00:00

“소득격차, 4년 만에 줄었다.” 지난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도 3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언론을 비롯해 집권여당, 정부 심지어 청와대가 일제히 자축하듯 내세운 제목이다. 하지만 취재과정에서 만난 국민들은 “거짓말” 혹은 “말장난”이라는 부정적 평가 일색이었다. 이 같은 인식 차의 본질은 ‘주머니 속 현금’ 문제였다.

앞서 통계청은 3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명목소득이 월평균 487만6900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7% 늘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2015년 기준으로 물가변동률을 감안해 금액을 보정한 3분기 실질소득도 2.7% 증가했고, 처분 가능한 소득 또한 평균 248만280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9% 늘었다고 제시했다.

가계소득을 5단계로 나눠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명목소득은 월평균 137만1600원으로 1년 전보다 5만6800원(4.5%) 늘어나는 동안,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소득은 980만200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0.7%(6만4500원) 늘어 4년 만에 소득격차가 줄어들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를 두고 박상영 가계수지동향과장은 “저소득 가구는 정부의 소득지원 강화와 고용시장의 양적 호조에 따른 근로소득 감소폭 축소로 소득이 증가한 반면, 고소득 가구의 소득은 증가폭이 저소득 가구에 못 미치면서 소득 격차가 개선됐다”며 소득주도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정책의 효과가 3분기 기준으로 가장 컸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사결과 발표 직후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가계소득동향 상 저소득가구 소득감소는 아팠지만 2분기부터 좋아지는 조짐을 보이고, 3분기는 소득과 분배 면에서 좀 더 확실히 좋아지는 모습”이라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성과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고령화 추세, 유통산업 등의 구조변화가 지속하는 구조적 어려움에도 1분위 소득이 크게 늘어나는 것, 전분위 소득이 모두 늘어나는 가운데 중간층이 두터워진 것, 분배지표인 5분위 배율이 줄어든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변화”라며 “앞으로도 포용적 성장을 위한 정부 정책 노력을 일관되게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 고정비용 뺀 주머니 속사정은 오히려 악화

하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달랐다. 1분위 소득이 늘었지만 정부의 각종 지원에 힘입은 성과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마저도 각종 세금과 연금, 이자지출 등을 빼면 주머니에 남는 돈이 늘지 않아 소득증가를 체감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풀이했다. 나아가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이 소득 증가가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에 있는 만큼 현 체계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경제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한 경제학과 교수조차 “(가계동향조사결과는)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1분위 소득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정부지원금에 해당하는 이전소득이 늘었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구조는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아닐 뿐더러 지속가능성도 없다. 줄고 있는 근로소득이 증가해야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비농가 1분위 가구의 2017년 1분기 명목소득은 평균 139만8489원이었다. 이후 2분기에는 143만4559원, 3분기에는 141만6284원, 4분기에는 150만4820원까지 늘었다. 하지만 7%대에 머물렀던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크게 증가한 2018년 1분기 1분위 명목소득은 오히려 128만6702원으로 떨어졌다. 

이후 2분기 132만4915원, 3분기 131만7568원에 그쳤고, 4분기에는 급기야 123만8216원으로 줄었다. 역시 10% 이상 최저임금이 오른 2019년에도 1분기 125만4736원, 2분기 132만5477원에 그쳤다. 올랐다는 2019년 3분기 역시 137만4396원에 불과했다.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눈에 띄지 않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얼핏 좋아진 것 같은 주머니 사정조차 정작 정부 지원금에 의한 증가인데다, 각종 연금과 이자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계가 공개되기 시작한 2018년 이후 기초연금 등 정부가 무상으로 보조하는 ‘공적이전소득’과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이자비용 등 고정 지출을 의미하는 ‘비소비지출’ 규모가 함께 늘었다.

2018년 1분기 18만4900원이었던 공적이전소득은 2019년 3분기에 26만5900원으로 7분기 동안 8만1000원이 올랐다. 같은 기간 비소비지출은 28만9100원에서 34만8700원으로 5만9600원이 늘었다. 이 결과 전체 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을 뺀 나머지 쓸 수 있는 돈을 의미하는 ‘처분가능소득’은 82만9800원에서 86만6400원으로 3만6600원이 늘었을 뿐이다.

세부적인 통계분석자료는 없지만 2017년 소득과 단순 비교하면 주머니에 남는 돈이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더구나 공적이전소득의 경우 수급자격에 제한이 있어 이 마저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경우 주머니 사정은 더욱 나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꼽힌다. 

30대 후반이지만 개인사정으로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해 1분위에 속하는 노동자 A씨는 “정부에서 주는 돈이 어디 있느냐. 가져가기만 한다”면서 “내는 돈은 많아지고 소득은 그대로라 점점 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나마 부양가족이 없어 다행이지 혼자 버티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깊은 한탄만을 쏟아냈다.

이와 관련 A교수는 “공적이전소득은 곧 세금과 직결돼 수급액이 늘어난다는 것은 정부지출이 늘어나는 것이고 곧 세금증가를 의미한다. 더구나 공적이전소득은 제한된 이들에게만 지급되는 한계도 존재한다”며 “세금으로 지탱하는 소득주도성장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사각 없는 복지와 근로소득 증가를 위한 대책마련이 함께 강구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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