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노예”...‘카나비 사태’에 움직인 2030

“스무살 노예”...‘카나비 사태’에 움직인 2030

기사승인 2019-11-26 14:23:30

스무살 노예. 최근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화두로 떠오른 단어다. ‘스무살 노예’는 최근 불공정 계약으로 e스포츠 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카나비 사태’의 피해자인 서진혁(19)을 지칭한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롤)’의 프로게이머로 활동 중인 그의 닉네임이 ‘카나비’다.

서진혁의 피해 사실은 김대호 전 그리핀 감독의 폭로를 통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지난 시즌까지 그리핀 사령탑을 맡았던 김 전 감독은 지난달 16일 개인방송을 통해 그리핀과 중국의 징동게이밍(JDG)이 서진혁의 완전 이적을 추진하며 4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프로게이머는 평균 수명이 5년 미만일 정도로 활동 시기가 짧다. 실제로 라이엇 게임즈는 3년이 넘는 선수 계약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감독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핀은 8억3000만원 상당에 이르는 거액 이적료를 받는 조건으로 서진혁에게 장기계약을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조규남 전 그리핀 대표는 ‘장기계약을 거부할시 JDG와의 사전접촉(템퍼링)을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라이엇 게임즈와 한국e스포츠협회가 ‘롤 챔피언스코리아(LCK)’ 운영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조사에 나선 결과 김 전 감독의 주장은 사실로 밝혀졌다. 서진혁의 JDG 임대 과정에서 불공정 계약이 있었고 완전 이적 과정에서도 장기계약을 체결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그리핀 측이 서진혁을 FA(자유계약선수)로 풀고, 조 전 대표가 사퇴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조 전 대표가 김 전 감독이 선수들을 상대로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하면서 진실공방이 펼쳐졌다. 이에 LCK 운영위원회가 20일 내부 폭로자인 김 전 감독에게 조 전 대표와 같은 수준의 징계(무기한 출장 정지)를 내리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언론 보도를 통해 에이전트의 ‘쌍방 대리 의혹’, ‘불공정 계약서’가 드러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지난달 17일 국민일보 보도에 의해 서진혁의 에이전시 키앤파트너스가 그리핀에게 법률 자문을 한 법무법인 비트와 사실상 동일한 회사인 것이 밝혀졌다. 21일 국민일보가 공개한 불공정 계약서에는 선수가 30일 이상 입원할 경우, 선수의 기량이 떨어질 경우 팀은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어 충격을 줬다. 연락이 두절되면 팀은 선수와의 계약을 해지한 뒤 ‘5000만원+그간 지급한 모든 돈’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도 담겨 있었다. 


결국 e스포츠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카나비 사건을 재조사 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조 전 대표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의 조사를 요구했으나 김 전 감독에게는 라이엇 코리아 자체 조사를 시행해 징계를 발표했다면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6일 오후 2시 기준으로 19 만여 명이 청원에 동참하는 등 열기가 뜨겁다. 

이밖에도 일부 팬들은 LCK의 공식 스폰서인 우리은행에 연락을 시도해 유의미한 답변을 얻어내기도 했다. 우리은행 측은 “(그리핀 사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중에 있다”며 “사실관계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후원 중단 여부 등을 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팬들의 반발에 분위기도 변하는 모양새다. 그리핀의 운영권을 쥐고 있는 스틸에잇은 “언론 보도와 팬 여러분께서 지적한 ‘불공정 계약서’에 대해 그 심각성과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며 선수단에 대한 계약서를 파기, 재작성 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LCK 운영위원회 또한 김 전 감독의 징계에 대한 수위 조절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대·30대가 주를 이루는 e스포츠 팬들이 집단화 해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에 e스포츠 업계도 적잖게 놀란 모양새다. 지난 LCK 서머 관중의 73.6%는 20대였다. 30대도 15.4%에 달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e스포츠에서 이런 식의 집단화 된 울림은 처음이다. 권력화 된 기성세대가 아닌 젊은 층에서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어 “e스포츠에 대한 애정, 청년 세대의 불공정 문제가 결합해 화학반응을 크게 일으켰다. 이번 사태에서 라이엇 등이 보여준 행태가 기득권이 보여준 그것과 판박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030 세대가 더욱 크게 분노했다고 본다”고 전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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