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슬은 용이 될 수 있을까

유산슬은 용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본 '유산슬 열풍'

기사승인 2019-11-29 08:00:00

아랫입술을 깨물고 능청을 떠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선배가수 나훈아를 흉내내는 얼굴에 진지함과 장난기가 동시에 스친다. ‘메뚜기 춤’으로 능숙하게 분위기를 띄우고, 미리 준비한 멘트가 없어도 30초의 자기소개를 거뜬히 떼운다. 영화 ‘극한직업’의 대사를 빌리자면 이렇다. “지금까지 이런 신인은 없었다. 이 자는 가수인가, 개그맨인가!” ‘국민MC’ 타이틀을 벗고 ‘트로트계의 이무기’로 돌아온 유산슬의 이야기다.

유산슬은 방송인 유재석의 또 다른 ‘페르소나’다. MBC ‘무한도전’으로 13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김태호 PD가 새 예능 ‘놀면 뭐하니?’를 통해 유산슬의 데뷔를 추진했다. 요즘 유산슬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섭외 문의가 밀물처럼 쏟아져서다. 28일엔 전남 순천으로 날아가 MBC ‘가요베스트’ 무대에 섰다. ‘놀면 뭐하니’ 측에 따르면 이날 유산슬은 고속도로 휴게소와 구례 오일장에도 들러 시민들을 만났다. 

가창력과 기교는 다소 떨어지지만, 유산슬의 스타성은 여느 아이돌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 ‘본체’ 유재석의 명성 덕택이다. 지난 16일 공개된 데뷔곡 ‘합정역 5번출구’는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차트에서 97위까지 올랐다. 트로트계 ‘괴물 신인’ 송가인의 데뷔곡 ‘엄마 아리랑’의 최고 순위(129위)보다도 높다. 청취자 가운데 70% 이상이 20~30대일 정도로 젊은 세대의 호응이 특히 열렬하다. “트로트가 워낙 친숙한 장르인데다, 사람들이 유재석의 노래를 궁금해하고, 신기해하고,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점”(조영수 작곡가) 등이 작용한 결과다.

KBS1 ‘아침마당’의 프로듀서 윤중경과 연출 강지원 씨는 “트로트 가수로 진정성 있게 활동 중이라는 점과 엔터테이너로서 유재석의 독보적인 가치와 확장성”을 높이 사 그를 ‘아침마당’으로 불러들였다. 경쟁사 콘텐츠를 섭외한, 획기적인 도전이었다. 두 PD의 모험에 시청자는 열광했다. ‘주부 프로그램’으로 알려졌던 ‘아침마당’은 유산슬 출연 이후 TV 비드라마 부문 화제성 2위에 오르는 ‘반전’을 보여줬다. “트로트 업계 모두가 ‘어떻게 해야 유산슬과 협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분위기”(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가 만들어진 이유다.

항간에선 “트로트 영재”라는 극찬도 나오지만, 사실 유산슬은 ‘노력형’ 가수다. 그의 또다른 데뷔곡 ‘사랑의 재개발’을 쓴 조영수 작곡가는 “처음 (유산슬이) 노래를 불렀을 때 ‘가수는 아니구나’ 싶었는데, 녹음할 때가 되니까 실력이 확 늘었다”고 했다. 바쁜 일정을 쪼개 밤이나 새벽마다 차 안에서 노래 연습을 하며 실력을 갈고 닦은 덕분이다. 조 작곡가는 “지금 부르면 더 잘 부르실 것”이라면서 “이미 유재석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상태에서 가창력만 더 는다면, 트로트계에선 톱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유산슬의 예명은 처음에 ‘이무기’가 될 뻔했다. 김도일 작곡가가 ‘트로트계 용이 되라’는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었다. 예능 콘텐츠로서 그의 가치는 용이 되고도 남겠지만, 음악 콘텐츠로 봤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TV를 통해 만들어진 인기”라며 “음악적으로 대단히 치켜세울만한 콘텐츠는 아니”(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유산슬의 인기에 국한해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면서 “유산슬을 통해 트로트계를 ‘붐 업’ 시켰듯, 김태호PD는 이후에도 유재석을 앞세워 또 다른 새로운 지대로 확장해나가는 방법을 고민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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