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정에서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강제 계약을 체결할 국제법적 권한이 있고 우리나라가 그걸 거부할 수 없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그런 강제 계약이 계속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박형욱 대한의학회 법제이사는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보건의료정책에서 정부·여당과 의료계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정부와 의료계의 논의가 형식적 과정에 그칠 뿐 실질적인 대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는 “우리나라는 기획재정부가 정한 재정지원과 의료보험료율의 한계로 인해 의료계와 대화한다기보다 ‘관리’하는 것에 가깝다”며 “대통령과 정치인이 약속한 혜택을 국민에게 주기 위해 공무원들이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안을 의료계에 제안하고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구조다. 이로 인해 의료는 점차 왜곡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보장의 확대를 거부할 사람은 없고 가난한 사람이 치료받아야 한다는 대명제를 반대하는 사람도 없다”며 “다만 경제적인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는 누구나 대학병원에서 진료받고자 한다. 의료 체계의 지속 가능한 요소가 무엇인지 봐야 한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방지 대책,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른 후속 조치 등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정부에서 시행한 사례를 들어 의료계와의 소통 부족을 지적했다. 그는 선택진료제 폐지를 언급하며 “우리 사회에서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넘어갔다”며 “국민에게 부담을 준다고 해서 완화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전공의가 수술해도, 10년 차 대학교수가 수술하더라도 똑같은 수가를 받고 있다. 이는 모든 공무원이 똑같은 월급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의 부담 완화는 이해하지만, 경력에 준하는 수가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의과대학 설립에 대해서는 “없다면 설립할 수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지금도 10개 이상의 국공립 의과대학이 전국에 있다. 지금 이 대학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해결할 방안을 먼저 제시해야 하는데 정책적 우선순위가 없다. 정부와 여당의 정책으로 확정되면 실현하기 급급하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단체는 의료계가 정부와의 대화 이전에 의료소비자와의 만남을 제안했다. 백대용 소비자시민모임 회장은 “의료계가 의료정책의 중요한 한 축인 의료소비자와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며 “의료소비자와 소통하고 논의해 솔루션을 만들어서 정부에 가면 원하는 의료정책을 제안하기 수월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 회장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와 관련해 WTO 상소심에서 우리나라가 이겼다”며 “그 이유로 과학적 기준에만 기초하지 않고 소비자의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입국의 금지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의료계도 의료소비자에 대한 실질적인 배려와 공감이 필요하다.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어떤 것도 중요한 정책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 이사는 “소비자단체와 함께 대학병원 쏠림 현상, 건강보험 재정 효율적 운영 등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런 것들에 대해 소비자단체도 고민해야 한다. 정례적인 만남으로 협의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백 회장도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 평상시에도 소통해 방법을 찾아갔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손호준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정책의 주된 부분은 의료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을 조율하는 것”이라며 “사회가 변화하고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정부의 정책 집행과정에서 의료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수립도, 집행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복지부 내 위원회를 많이 구성하고 있지만 변화된 정책 수행체계를 뒷받침하기에는 인식과 역량,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며 “의료계가 전문가 집단으로 공공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인식과 역량을 갖춰야 한다. 각자의 이익만 고수해서는 정책이 화합을 이룰 수 없다. 각 직종이 제3자의 관점에서 적극적인 정책 대안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