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220여년전 우리나라 영토 입증..경북 독도사료연구회 발굴

독도, 220여년전 우리나라 영토 입증..경북 독도사료연구회 발굴

기사승인 2019-12-10 15:42:34

조선시대 정조 시대인 220여년전에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입증하는 사료가 새롭게 발굴됐다.

10일 경북도에 따르면 경북독도사료연구회가 올해 연구회 과제 수행 중에 정조 연간에 예조 정랑(정5품 실무관리)이였던 이복휴(1729~1800)가 독도에 영토비를 세우자고 건의한 기사를 찾아냈다.

이번에 새롭게 발굴한 사료는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정조 17년(1793년) 10월 1일자 기사다.  

기사에는 우산도를 ‘울릉외도(蔚陵外島)’라 칭했으며 이복휴가 우산도에 영토비를 세워 우리 땅임을 증명하자고 건의 한 내용이 담겼다.

이복휴는 당시 “신이 본조(예조)의 등록을 살펴보니, 울릉외도는 그 이름이 松島로, 바로 옛날의 우산국입니다.”라면서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나무사자로 섬사람들을 겁주어 항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만일 송도에 비를 세워 이사부의 옛 자취를 기술한다면 그 섬이 우리나라 땅 임을 증빙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정조에 건의했다.

연구회 소속 유미림 박사(한아문화연구소장)는 “이복휴가 말한 ‘울릉외도’는 오늘날의 독도를 가리킨 것”이라면서 “먼저 여기에 보이는 우산국은 ‘동국문헌비고(1770)’에서 울릉도와 우산도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기록한 것을 근거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마쓰시마(松島)는 당시 일본인들이 우산도를 부르는 호칭이었으며, ‘울릉외도’가 바로 ‘松島’라고 했으므로 ‘울릉외도=松島=우산도’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울릉외도’는 이복휴로 인해 처음 등장한 단어며, 그가 ‘울릉외도’라고 칭한 것은 ‘우산도’보다 울릉도의 속도임을 잘 드러낸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결과적으로 정조는 영토비 건립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지만 220여년전에 이미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입증하고 있다. 

정조가 당시 이복휴의 제안을 받아드리지 않은 것은 수토제가 정착되면서 울릉도 및 속도에 대한 영유권이 확립됐다고 인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 박사는 이번 사료의 의미에 대해 “첫째 ‘울릉외도’라 칭해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도서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며, 둘째,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을 예상하고 그 대응책을 강구하려 했다는 것이며, 셋째, 조선의 관료가 영유권 확립을 구상한 것은 조선 정부가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부여했다.

한편,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는 2010년에 발족한 이후 지난해까지 9년간 일본사료 21편을 번역·출판했고, 올해부터 국내사료 번역을 시작했다. 

올해 연구과제는 관찬사료 4종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에서 울릉도·독도 기사를 발췌 번역하는 것이며, 이를 정리해 연말 경북도에 제출할 예정이다. 

서장환 경북도 독도정책과장은 “이번 사료는 조선의 왕(정조)과 관료가 독도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서 “이로써 최근 이영훈 교수가 조선왕조는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내용을 전면 반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안동=노재현 기자 njhkukinews@gmail.com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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