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정부가 가져다 쓸 곳간이 역대 최대 규모로 채워졌다. 하지만 예산의 사용처나 전체 혹은 세부 예산규모에 대한 조율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추후 논란이 될 여지가 커 보인다.
일단 국회는 10일 법정기한을 8일이나 넘겨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예산안은 당초 정부가 제안한 513조5000억원의 슈퍼예산보다 1조2000억원이 줄어든 512조3000억원이 최종 확정됐다. 정부안에서 9조1000억원을 감액하고, 각종 현안에 대응하고자 국회가 추가 책정한 예산 7조9000억원을 증액한 결과다.
이에 따른 내년도 정부 총지출은 올해 본예산 기준 총지출 469조6000억원보다 42조7000억원(9.1%)이 증가한 수준이며,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된 2009년 10.6%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내년 총수입 481조8000억원과 비교하면 약 30조원의 적자 편성을 한 셈이다. 이에 관리재정수지 적자규모는 7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날 편성된 예산을 12개 분야로 나눠보면, 보건·복지·고용(181조6천억원→180조5천억원), 산업·중소·에너지(23조9천억원→23조7천억원), 공공질서·안전(20조9천억원→20조8천억원), 외교·통일(5조5천억원→5조5천억원) 일반·지방행정(80조5천억원→79조원) 5개 분야는 정부안 대비 편성액이 줄었다.
반면 사회간접자본(SOC, 22조3천억원→23조2천억원), 농림·수산·식품(21조원→21조5천억원), 교육(72조5천억원→72조6천억원), 환경(8조8천억원→9조원), 연구·개발(R&D 24조1천억원→24조2천억원), 문화·체육·관광(8조원→8조원) 6개 분야는 늘었다. 국방(50조2천억원)은 정부안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문제는 일련의 예산편성 및 의결과정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수정예산안 또한 한국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으로 구성된 ‘4+1 예산 협의체’에서 만든 안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정부안을 초과하거나 정부안에 반영되지 않았던 지역구 예산들이 무더기로 증액·추가되기도 했다.
당장 한국당은 ‘4+1 협의체’ 수정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이를 반대하며 정부 원안에서 15조9000억원 가량을 감액하고 1조7000억원 정도를 증액해 500조원에도 못 미치는 약 499조3000억원의 예산 수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수정안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부동의 의견으로 표결도 거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후 ‘4+1 협의체’ 수정예산안은 한국당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표결에 부쳐졌고, 재석 162인 중 찬성 156인, 반대 3인, 기권 3인으로 통과됐다. 본회의 속개 28분만이다. 일련의 과정을 두고 한국당은 철야농성을 벌이며 ‘세금도둑들의 예산안 날치기 불법’, ‘의회쿠테타, 의회독재’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 확장적 재정정책과 지역구 국회의원 배려예산=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내년도 예산안을 살펴보면, 한국당을 포함해 여·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예산이 다수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4+1 협의체’에서 각 당의 대표로 예산 수정안 심사에 참여한 의원들이 실속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의 경우 지역구인 경기 구리시 관련 예산으로 정부안에는 없던 아천빗물펌프장 정비비로 4억원을 확보했다. 구리 하수처리장 악취개선에 쓰일 예산도 정부안 12억4000만원에서 10억원을 더 추가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전해철 의원도 신안산선복선전철사업에 정부안 908억원에서 50억원을 추가로 따냈다. 신안산선 2단계 사전타당성 조사에 필요한 2억원, 안산시 상록구 사동 복합문화체육센터 건립비로 20억원도 각각 추가편성했다.
‘4+1 협의체’에 참여한 바른미래당 김관영 의원은 군산대학교 노후화장실 환경개선에 9억원, 군산시 옥서면 농어촌도로 확장에 5억원을 반영시켰다. 군산시 신덕~개정 도로 확장·포장에 1억원, 군산 예술·콘텐츠 활성화 특화사업에도 10억원이 증액됐다.
‘4+1 협의체’에 대안신당 대표로 참여한 장병완 의원의 지역구인 광주 동구남구갑에도 예산이 추가로 배정됐다. 정부가 1513억5900만원을 책정한 광주-강진고속도로 건설예산은 230억원이 늘었다. 예산안에 없던 광주교육대학교 기숙사 리모델링비로도 3억2000만원을 확보했다.
각 당 대표급 인사들을 배려한 예산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지역구인 세종시는 지역교통안전환경개선사업에 정부안 9억5000만원에서 5억1200만원이 증액된 예산을 받게 됐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의 지역구인 경기 고양갑도 고양서 원당지구대 청사시설 취득 예산 5100만원과 고양시 신도지구대 예산 33억2700만원이 추가 편성됐다.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 지역구인 전북 정읍고창군에는 고창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사업에 2억원, 고창하수처리시설 증설사업에 5억원이 배당됐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의 지역구인 전북 전주병에서는 전주역사 개량에 정부안 14억원에서 추가로 10억원을 확보했다. 전주탄소산단 진입도로 개설사업비로는 정부안 2억3900만원을 9배가 넘는 20억원이 책정됐다.
조배숙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지역구인 전북 익산을에는 미륵사지 관광지 조성을 위한 예산 7억2500만원이 반영됐다. 역시 정부안에는 없던 익산 IoT산업안전체험교육장 건립 예산도 10억원 배정됐다.
극렬히 반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실세 의원들에게도 일정부분 지역구 추가예산이 나눠졌다. 예결위원장이자 한국당 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된 김재원 의원의 지역구인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에는 구미~군위IC국도건설사업 비용으로 정부안 45억6400만원에 20억이 더 얹어졌다.
42억4200만원이 배정됐던 군위~의성 국도건설이나 82억2000만원이 책정됐던 삼자현터널국도건설에도 각각 10억원이 추가로 들어가게 됐다. 정부안에 없던 59번 국도 상주낙동~의성다인 선형개량공사비로도 4억원이 추가됐다.
이밖에 예결위 한국당 간사인 이종배 의원의 지역구인 충북 충주에는 3억원을 들여 국립충주박물관을 건립하기로 했고, 충주 두무소 생태탐방로 조성에 1억원, 충주 석종사 개보수에 1억1200만원이 각각 쓰일 예정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