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상훈 법정구속…“미전실부터 협력사까지 노조와해 공모했다”

삼성 이상훈 법정구속…“미전실부터 협력사까지 노조와해 공모했다”

기사승인 2019-12-17 17:41:29

삼성 자회사의 ‘노조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삼성 2인자’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이 의장 외에도 조직적으로 노조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를 받은 삼성그룹과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줄줄이 유죄가 선고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7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의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에게도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강 부사장은 앞서 에버랜드 노조와해 의혹 사건으로도 징역 1년4개월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 의장과 강 부사장은 나란히 법정 구속됐다.

원기찬 삼성카드 대표, 박용기 삼성전자 부회장,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 등에게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날 검찰은 이 사건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법인을 포함해 총 32명을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이 가운데 26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최평석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징역 1년2개월),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징역 1년),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징역 1년6개월) 등 전·현직 임직원들도 이날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삼성전자의 노사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노무사(징역 10개월)와 노사협상 등에 개입한 전직 정보경찰(징역 3년) 등 두 명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날 하루에만 7명이 무더기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이 의장 등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앞서 2013년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일명 ‘그린화 작업’으로 불리는 노조와해 전략을 그룹 차원에서 수립해 시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등 자회사에는 대응 태스크포스(TF)와 상황실 등이 설치돼 전략을 구체화하고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는 강성 노조가 설립된 하청업체를 폐업 시켜 노조원들을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하고, 노조원에 대한 민감한 정보를 빼돌리고 표적 감사를 벌이기도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회삿돈을 빼돌려 사망한 노조원 유족에 무마용 금품을 건네거나, 노사 협상을 의도적으로 지연한 혐의 등도 있다. 이 과정에 경총 임직원이나 정보 경찰이 개입한 사실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런 혐의 중 일부를 제외한 상당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특히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에서 만든 ‘노사전략 문건’이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협력업체 순으로 이어진 공모관계에 따라 실행됐다는 검찰의 공소사실 구도를 재판부는 그대로 인정했다.

미전실이 전략에 따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계열사에 배포한 뒤 연 2회 대응 태세 점검을 하고, 계열사가 체크리스트에 따라 노조 설립에 대응한 비상 시나리오를 만들면 미전실이 이를 점검해 다시 보완사항을 지적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런 지시·공모관계는 삼성전자와 그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 사이에서 반복됐다.

삼성전자가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해 대응 태세 점검을 해 미전실에 보고했고, 삼성전자서비스는 비상 시나리오를 구축해 협력업체에 노조가 설립되자 그대로 시행한 것으로 재판부는 파악했다.

재판부는 “미전실에서 하달돼 각 계열사와 자회사로 배포된 연도별 그룹 노사전략 문건과 각종 보고자료 등 노조 와해·고사 전략을 표방하고 구체적 방법을 기재한 문건의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며 “이 문건들을 굳이 해석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범행의 모의와 실행, 공모까지 인정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이를 실무자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것일 뿐 고위층에 보고되거나 실제 시행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미래전략실 강경훈부터 최고재무책임자(CFO) 이상훈에 이르기까지 노조 와해·고사 전략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증거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를 사실상 자신의 하부조직처럼 운영했다. 수리기사들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 세력의 약화를 위해 지배개입을 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판단에 근거해 기획 폐업에 응한 협력업체 사장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삼성의 지시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응한 것이므로 범행에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재판부는 양벌규정으로 기소된 삼성전자서비스 법인에는 벌금 7400만원을 부과했지만, 삼성전자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이상훈 의장이 대표자라며 삼성전자도 기소했지만, 이상훈 의장은 CFO이지 법적인 대표자라고 할 수 없다”며 “법률상 대표자가 있는 상황에서 이상훈이 사실상 대표권을 행사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상훈 의장에 대해서는 “본인이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하지만, 윗사람의 공모·가담에 대해 단지 지엽적인 부분을 몰랐다는 이유로 면책해드릴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실형을 선고한 피고인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과정에서 잠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여러 고민을 했지만, 실형을 선고하고 구속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재판부로서도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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