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돌’ 홍콩의 부서진 크리스마스

‘격돌’ 홍콩의 부서진 크리스마스

[김양균의 현장보고] 도전받는 ‘원 차이나’… 브로큰시티⑥

기사승인 2019-12-26 14:09:20

“이봐 친구,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라고.” 

한 외국인이 거리에 서 있던 무장경찰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인사를 듣지 못한 걸까. 경찰 A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운집한 군중을 계속 주시했다. 웃으며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는 누굴 찾고 있는 걸까. 

그로부터 한 시간여 후 귀를 찢는 폭발음이 작열했다. 최루탄이 발사되고, 비명과 고함소리가 요동쳤다. A는 검은 옷을 입은 시위 참가자를 아스팔트 바닥에 거칠게 누르며 외쳤다. “가만있어, 이 바퀴벌레야!” 지난 24일 밤 홍콩 구룡섬 침사추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 폭풍 전야

침사추이 선착장. 이곳은 홍콩섬(센트럴)을 가기 위해서나 그곳으로부터 온 이들로 늘 붐빈다. 침사추이의 명물 시계탑과 ‘스타의 거리’가 있어 홍콩에 온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방문하는 명소. 성탄절 전날 불을 밝힌 대형 트리와 길거리 공연이 어우러져 이곳은 발 디딜 곳 없이 붐볐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맞아 레이저쇼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기 위해 일찌감치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경찰로서는 피아(彼我)의 식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날 시위 첩보가 들어와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이 사람 사이에서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그가 구호를 외쳤다. “홍콩과 함께 서라(Stand with Hong Kong).” 그러자 시민들도 하나, 둘씩 구호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다시 구호를 제창하면 거리의 시민들이 이를 따라하는 식으로 게릴라 집회가 시작됐다. 집회 참여자들은 스타의 거리를 휴대전화 전등을 켜고 행진했다. 

누군가 ‘홍콩에 영광을(Glory to Hong Kong)’이란 민중가요를 부르다 노래는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자 선착장 앞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길거리 뮤지션이 노래를 이어받았다. 자작곡이나 팝송 등을 부르던 젊은 음악가의 동참에 공연을 즐기던 시민들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눈물을 흘리는 시민도 있었다.  

“이 땅에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모든 이는 분노할까. 우리의 결의, 침묵을 깨고 울리는 함성. 이곳에 희망이 다시 찾아오기를(중략). 여명이 밝아오는 홍콩. 함께하는 아이들의 정의와 혁명. 바라는 건 민주주의와 자유. 우리가 바라는 건 홍콩에 영광을.”  

노래는 고요했지만, 울림은 묵직했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높았다. 전날 센트럴 에러버딘 광장에 모인 군중도 이 노래를 불렀다. 이후 몇 곡을 더 부르고 이 젊은 음악가는 공연을 중단했다. 그의 노래를 탐탁지 않아 했던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곁에 섰던 시민들은 그에게 음료수를 건네거나 기타 통에 지폐를 넣는 것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기자도 지폐 몇 장을 놓아두고 자리를 떴다. 

경찰의 수가 눈에 띄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오후 8시39분 ‘와장창’ 소리와 함께 한 중국계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검은 옷을 입은 청년 두 명이 뛰어나왔다. 한 명은 걸음을 바꿔 다시 돌아와선 유리를 망치로 치고 진열해 놓은 박스 따위를 쓰러뜨리곤 그대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업장은 셔터를 내리고 그날 장사를 접었다. 

9시5분. 모퉁이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집회 참여자를 붙든 경찰들 주위로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취재진도 속속 모여들었다. 경찰은 곤봉과 방패로 흥분한 시민의 접근을 막았다. 양쪽 모두 흥분해 있었다.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홍콩 시민들은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이를 사회관계망(SNS)에 올려 공유하는 게 습관화 되어 있었다. 특히 젊은 층의 참여도가 높았다. 

9시20분. 대기 중인 경찰 병력이 속속 모여들었다. 경찰은 레이저 라이트로 시민들의 눈을 비췄다. 여러 차례 강한 빛에 눈이 노출되자 앞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이미 침사추이 선착장에서 하버시티에 이르는 주요 도로는 통제된 상태였다. 수많은 군중이 차도를 걸었다. 기자도 이들을 따라 중앙 분리대를 건넜다. 

9시38분. 청년 서넛이 길을 건너며 도로 중앙에 서 있던 경찰 A에게 “멍멍”이라고 외쳤다. A는 이들을 노려보았고, 청년들은 키득댔다. 참고로 홍콩 시민들은 경찰을 ‘개’에 빗대 강경 진압을 비판한다. 

◇ 브로큰시티

이후의 상황은 TV와 뉴스를 통해 익히 들어 알 것이다. 침사추이, 몽콕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발생했고, 특히 침사추이에서는 다수의 시민들이 체포됐다. 현지 뉴스도 이날 밤의  격돌 현장을 주요 기사로 다뤘다. 기자는 경찰이 뿌린 고추스프레이에 눈을 맞아 현장의 응급구조사에게 세척 등의 처치를 받았다. 그는 의료진을 향한 체포, 구금, 폭력 등에 대해 “화가 난다”고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기습 시위와 집회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시위의 장소는 광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쇼핑의 천국, 면세의 도시. 그러나 쇼핑몰에서 추락한 집회 참여자의 모습을 본 이후 쇼핑몰의 대형 전광판과 화려한 네온사인은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앨렌 무어는 작품 ‘왓치맨’에서 우리에게 이 서늘한 화두를 내놓는다. “우리가 계속 세상을 들여다볼수록 그것은 우리의 관점에서 단조로워진다. 그러나 다른 시점에서 보면 그것은 다시 새로운 것처럼 당신을 숨 막히게 할지 모른다.” 

홍콩=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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