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1대 국회의원을 뽑기 위한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했다. 하지만 20대 국회는 표 대결이 이뤄질 ‘경기장’을 정할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에 후보자도 유권자도 공정선거·정책선거를 치를 기회를 또 다시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다.
총선을 99일 앞둔 7일, 국회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국무총리 임명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8일까지 벌일 예정이다. 이어 9일에는 인사청문회 결과와 관계없이 국회 본회의를 열어 민생·경제법안 처리에 나설 계획만을 세워두고 있다. 이마저도 ‘확정’은 아니다.
여·야 정당들의 논쟁 또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방안이나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의 적격성에 대한 것들 뿐이다. 그 어디에도 오는 4월 15일로 예정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위한 선거구 획정안 마련계획은 포함돼 있지 않다.
문제는 선거구 획정안 마련시점이 법적으로는 이미 9개월 가까이 경과한데다, 선거를 치를 수 있는 한계시한까지 임박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거를 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국외 거주자명부 작성일인 2월26일(D-49일) 전에는 확정돼야한다.
더 큰 문제는 국회에서 선거구 획정기준을 마련해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에 이를 넘겨도 선거구 획정을 위한 논의까지 과거보다 긴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선거구획정위 관계자는 “통상 2달의 시간이 걸린다”며 “이미 한 참 늦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선거관리상황 측면에서 보면 지역의견청취나 정당의견수렴 등의 일정을 감안해 통상 2개월 정도라고 말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편법이지만) 일단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된 만큼 획정안 마련에 조만간 착수할 예정이다. 얼마가 걸린다고는 말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달 28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며 만18세의 선거권이 인정되는 등 일부 조항들이 함께 개정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있다. 인구 감소세로 인해 지역구 통폐합이 예견된 지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선거구 획정 논의과정에서 강하게 반발할 수 있어서다. 실제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1일 “선거구 획정을 멋대로 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여기에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호남지역에 기반을 둔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가칭) 의원들을 비롯해 세종시를 포함해 충청도를 지역구로 삼고 있는 의원들, 서울 강남·노원, 경기 군포·안산단원구 등 지역구 변화가 예상되는 지역 출신 의원들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마치 역대 최악의 국회가 역대 최악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21대 국회구성에 훼방을 놓는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윤달(2월 29일)이 있어 하루라도 번게 다행일 정도”라며 “공정선거는커녕 일하는 국회를 담보할 정책선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혹평했다.
한편 역대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구 획정의 경우 2004년 17대는 37일 전, 2008년 18대 47일 전, 2012년 19대 44일 전, 2016년 20대는 42일 전에 이뤄지며 지속적으로 ‘지각’, ‘깜깜이’ 선거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 가운데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미 지난 12월 17일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으며, 예비후보 등록을 했을 경우 선거사무소 설치, 선거운동용 명함 배부, 어깨띠 혹은 표지물 착용, 본인이 직접 통화로 지지 호소, 선관위가 공고한 수량(선거구 안의 세대수의 10% 이내) 범위 내 한 종류의 홍보물 발송 등이 허용된다.
예비후보자로 등록을 원할 경우에는 관할 선관위에 가족관계 증명서와 전과기록 증명 서류, 학력 증명서 등을 제출하고 기탁금으로 300만원을 납부하면 된다. 만약 공무원 등 입후보 등록이 제한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오는 16일까지 그 직을 사직해야한다. 만약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는 경우에는 선거일 30일 전인 3월 16일까지만 사직하면 된다.
더불어 기존 국회의원들은 이날부터 의정활동보고를 하지 못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오는 2월 15일부터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가 금지된다. 여기에 선거당일 국외에 머물러야 하는 유권자의 경우에는 오는 2월 15일까지 재외선거인 등록 혹은 변경을 신청해야하며, 재외국인 투표는 4월 1일부터 6일까지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