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당’과 같은 형식의 정당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연동형비례대표제(연비제) 도입으로 줄어드는 비례대표 의석을 추가확보하기 위해 ‘비례자유한국당’을 등록한 자유한국당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제시되지 않아 연비제 도입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회피하려는 편법에 대한 우려는 계속될 전망이다.
앞서 선관위는 13일 오후 3시경 전체 위원회의를 열고 “기성정당 명칭에 ‘비례’만을 붙인 경우 유권자들이 기성정당과 오인·혼동할 우려가 많으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이 왜곡되는 선거결과를 가져오는 등 선거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며 ‘비례○○당’과 같은 형식의 정당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에 한국당을 제외한 여타 정당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며 “국민의 선택을 기만하고 왜곡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꼼수 위성정당 ‘비례자유한국당’ 설립 구상을 철회하고, 정책과 인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정정당당한 정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고 논평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결과 발표 직후 “‘꼼수’가 ‘상식’을 이길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비례자유한국당’ 운운은 어렵사리 개정한 선거법의 입법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한 만행이었다”면서 “유권자를 우롱하는 자유한국당에, 법이 직접 채찍을 든 것”이라고 국민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이밖에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불필요한 논란과 여론 혼란을 미리 방지한 뜻 깊은 결정”이라고 했다. 심지어 이은혜 민중당 대변인은 “국민은 본인들의 추악한 죄를 반성하기는커녕 비례꼼수당을 만들어 국민을 거듭 기만한 추태를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유권자들이 원죄에 괘씸죄까지 추가해 한국당에 혹독한 벌을 내리리라 믿는다”고 심판론을 꺼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당의 입장은 달랐다. 비례(자유)한국당과 자유한국당은 형식상 엄연히 별개의 정당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선관위의 결정이 청와대, 문재인 정권의 입김에 영향을 받아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결과라고 주장하며, 결정에 불복하는 법적대응도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김성원 한국당 대변인은 “작년 12월만 해도 비례정당 창당이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 선관위 해석이었다. 어제는 합법, 오늘은 불법인가?”라고 반문하며 “어제(12일) 문재인 대선캠프출신 조해주 선관위원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니, 그제야 정권의 눈치가 보였나보다”라고 혹평했다.
이어 “대통령이 임명한 코드 장관은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대통령이 임명한 코드 선관위원은 대의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선관위의 공정성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조해주라는 이름도 ‘편파’ 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급조한 핑계로 정당설립의 자유를 대놓고 파괴하는 것에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나아가 “날치기 통과된 연동형 비례제야말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을 왜곡하고 있음이 자명하다”고 헌법소원 제기 등을 시사했다. 심지어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비례(자유)한국당과 한국당은 형식상 명백히 다른 정당이라 불복소송을 직접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명칭사용 불허결정에 대한 취소소송은 “검토 중”이라고 말해 가능성도 열어두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정의당은 선관위의 결정에도 비례대표 확보를 위한 ‘위성정당’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보였다.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은 “개정된 현 선거제도의 취지를 뒤흔들려는 자유한국당의 시도가 일단은 가로막힌 것”이라면서도 “다만, 선관위는 다른 명칭으로는 정당 등록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밝혀, 자유한국당이 또다시 헛된 희망을 품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했다.
이어 “명칭의 유사성 정도와 관계없이, 자유한국당이 창당하려는 위성정당은 그 정당의 본질이 ‘위장정당’이자 ‘가짜정당’이므로 향후 선관위는 창당 등록을 수리 거부해야 한다”며 “위장정당·하청정당의 탄생 시도를 막기 위한 선거관리위원회의 단호한 결정이 뒤따르길 바란다”고 선관위의 추가적인 대응을 거듭 당부했다.
더불어 “비례자유한국당의 창당 준비과정에서 정당법, 정치자금법,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다수 밝혀진 바 있다. 이에 선관위는 책임 있게 진상을 조사해야 하며, 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의 엄정한 판단이 필수불가결하다”며 “필요한 경우 고소·고발해 우리나라 정당 정치가 불법과 꼼수로 혼탁해지는 상황을 방지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