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채용비리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이 22일 열렸다. 이날 동부지방법원 501호에서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전 신한은행장) 등 신한은행 인사담당자 및 책임자 7명에 대한 채용비리 재판 1심 판결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은 시작 전부터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 뜨거운 취재 열기를 보여줬다. 재판이 시작되기 1시간 전인 오전 9시에는 이미 동부지방법원 4번 출구 앞에 취재진들이 대형을 갖추고 조 회장의 재판 참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는 줄 알았던 신한은행 채용시스템이 아버지가 기업·정부 고위직이거나 은행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특정 지원자들에게 뒷문을 열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은 수많은 취준생과 학부모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충격만큼이나 채용비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은행 경영진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만큼 이날 재판 결과를 지켜보기 위한 시선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채용비리 혐의에도 차기 회장으로 재 추천된 조 회장의 재판결과를 지켜보기 위한 취재진이 몰렸다.
이날 9시 30분부터 법원 보안게이트가 오픈됐고, 수많은 취재진이 한 줄로 서서 보안게이트를 통과하는 진풍경을 보여줬다. 재판이 진행된 5층에서도 재판장의 문이 열리기까지 피고인과 변호사, 취재진은 물론 신한금융과 은행 직원들이 재판장 문 앞에 긴 줄을 형성하며 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9시 40분쯤 재판장 입장이 시작됐고, 재판장 방청석은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20-30석의 방청석은 입장과 동시에 만석이 됐다. 자리가 없는 이들은 벽면을 따라 쭉 둘러서며 삼면을 모두 채웠다. 나중에는 바닥에 앉는 사람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재판시작 직전에는 바닥에 앉을 자리도 없었다. 방청석에는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 관리되는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도 눈에 띄었다.
조 회장은 9시 53분경 조용히 등장했다. 그는 긴장한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자리에 않자 눈을 감고 대기했다. 곧 판사석에 남자 2명과 여자 1명의 판사가 등장했고, 정확히 오전 10시 재판부의 판결 선고가 시작됐다.
검찰과 변호사 그리고 피고인에 대한 출석확인을 거쳐 재판부는 선고이유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재판부는 채용비리에 따른 업무방해죄에 대한 설명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신한은행 채용과정에서 1~2차 면접위원에게 위임된 권리는 보호되어야 하고, 이는 외부 침해는 물론 인사부장 등 내부 침해로 부터도 보호돼야 한다”며 “업무방해죄에 대해 유죄가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 순간 조 회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고심하듯 약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판부가 직후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여성에게 불리한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았고, 공소사실과 달리 여성 합격자도 있어 채용에서 남녀를 차별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인정했지만 조 회장과 재판장의 침묵과 긴장감은 좀처럼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재판장에서 재판부의 발언 외에 처음으로 소리가 나온 것은 조 회장에 대한 형량이 발표된 직후였다. 재판부는 조 회장에게 선고하기에 앞서 “피고인(조용병 회장)은 인사부에 특이자·임직원 자녀의 지원사실과 인적관계를 알렸다”며 “피고인은 인사부에 해당 지원자들을 합격시키라는 명시적 지시를 안 했더라도 최고 책임자가 특정 지원자의 지원 사실을 인사부에 알린 사실 자체만으로도 인사부 채용업무의 적정성을 해치기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선고 직후 조 회장은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고, 방청석에서는 “됐다”라는 말이 나오며 그의 집행유예 결정을 환영하는 듯한 반응이 나왔다. 법정구속만 피할 경우 조 회장은 오는 3월 주총을 거쳐 3년간 연임이 가능하고,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향후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도 가능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뒤이어 나머지 사람들 모두에게 집행유예가 나오면서 방청석에서는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재판부의 선고가 끝나고 사람들은 빠르게 법원 4번 출구 앞으로 모였다. 법원을 나오는 조 회장에게 소감을 듣기 위해서 였다. 재판장에 들어설 때와 달리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등장한 조 회장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결과에 아쉽다”며 “재판을 45차례 하면서 많은 소명을 했는데 좀 미흡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동고동락했던 후배직원들이 아픔을 겪게 돼 마음이 무겁다”며 “회장이기 전에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안타깝다. 항소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으려고 노력하겠다”고 항소 계획을 밝혔다.
직후 조 회장에게 채용비리 피해자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왔고, 그는 “저희들이 그동안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제도개선하고 고칠 것은 고쳤는데 미흡한 점이 있다면 (개선)하겠다”면서 “지금은 재판을 막 나와 심정이 정리 안 돼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발언하며 급히 차량으로 이동했다. 취재진은 끝까지 그에게 피해자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으나 조 회장은 준비된 차량을 타고 법원을 떠났다.
조 회장이 떠난 직후 그를 보좌했던 신한 직원들은 서로를 향해 “수고했다”며 격려했고, 한쪽에서는 “2~3심에서는 회장님 출석이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나왔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이날 1심 판결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법정구속을 피하면서 경영활동에는 지장을 받지 않게 됐다. 또한 3월 주총에서 회장으로 재선임되는 데도 문제가 없을 예정이다. 다만 현직 금융지주 회장으로서 채용비리 혐의에 대한 유죄를 선고받은 점은 향후 그의 경영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