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니까 중국 그 바이러스 무섭더라.” “야, 걱정마! 설마 우리가 걸리겠어?”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공항 내 카페 옆자리의 대화였다. 흘끔 보니 이들의 목적지는 홍콩. 목소리에는 벌써부터 흥분과 기대가 배여 있었다. 떠나는 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지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었다.
홍콩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와 고속열차로 4시간 가량 떨어져 있다. 그리고 우한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2019-nCoV)의 진원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불과 23일 만에 중국에서만 571명의 환자와 17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중국내에서만 우한시를 포함해 ▲베이징 ▲광둥 ▲상하이 ▲텐진 ▲허난 ▲충칭 ▲랴오닝 ▲저장 ▲후난 ▲장쑤 등지로 확산되고 있다. 또 태국, 홍콩, 마카오, 한국, 대만, 미국, 일본 등에서도 환자가 발견됐다. 중화권이 바이러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기자는 할 수만 있다면 옆자리 여행객을 말리고 싶었다.
인천공항은 마스크를 쓴 인파가 평소보다 많았던 것만 빼면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였다. 사실 국경의 경계, 공항은 바이러스 방어의 최일선 현장이다. 한편으로 여행자의 무탈한 여정과 무사귀환을 바라는 사람들, 즉 검역관이 이 보이지 않는 위협과 매일 사투를 벌이는 전장이기도 하다.
◇ 112번 게이트
우한과 인천을 잇는 직항 노선은 일주일에 8번 운항된다. 제1여객터미널에선 112번 게이트가, 제2터미널의 246번 게이트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게이트가 고정된 된 것은 ‘우한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부터다. 인천공항검역소가 항공사와 인천공항공사에 이러한 조치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우한시도 감염병 오염지역으로 분류됐어요.” 인천공항검역소 A검역과장의 말이었다. 문제의 112번 게이트 인근 고정검역대에 도착하니 피곤이 역력한 얼굴을 한 A과장이 기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입국자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열화상카메라를 흘깃 쳐다보곤 지나쳤다. 그들의 발열 여부가 컴퓨터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포착됐다. 정상 체온은 파란색, 이상 발열이 있다면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A과장이 말했다. “입국자들이 이상증상을 자진신고 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우한 사태 이후부터죠.” 현재 인천공항검역소는 우한발 항공편을 탄 승객에게는 의무적으로 ‘건강상태 질문서’를 제출토록 하고 있다.
모퉁이를 바로 돌자 바로 112번 게이트였다. 바로 이곳에서 지난 19일 국내 첫 확진환자가 발견됐다. 만약 당신이 우한에서 인천행 직항노선을 탄다면 대한항공(제2터미널)이나 중국남방항공(제1터미널)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당신은 퍽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검역은 2곳, 증상에 따라 3곳에서 진행된다. ‘1선검역대’에서는 발열 및 호흡기 이상 여부가 확인된다. 문제없다면 패스. 당신은 곧장 입국 심사를 받으러 가면된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체온이 37.5도 이상으로 감지되거나 심한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발견되면 검역관은 당신을 2선검역대로 넘길 것이다. 그곳의 검역관은 고막에 체온계를 넣어 다시 한 번 발열 여부를 검사한다. 곁에는 흡사 우주복과 같은 방역복을 입은 역학조사관이 당신을 주시할 것이다. 역학조사관은 당신이 우한시를 방문했거나 현지 폐렴 환자와 접촉한 적이 있는지도 꼬치꼬치 묻고, 경우에 따라 당신은 ‘능동감시’ 대상으로 분류된다. 귀가는 허용하되, 거주지 인근 관할 보건소가 14일내 이상증상이 발생하는지 여부를 모니터링하게 된다.
마지막은 이송이다. 확진환자 발견 당시, 해당 환자는 1선검역대에서 체온이 38도 이상으로 확인됐다. 다시 2선에서의 측정 결과는 38.3도. 역학조사관은 환자의 동선 등을 따져 ‘조사대상 유증상자’로 사례분류를 마쳤다. 환자는 즉각 공항 내 임시격리로 옮겨져 이후 국가지정격리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경우 임시격리실 및 구급차로의 이동은 2차 오염을 막고자 최단거리 동선이 선택된다. 이동경로도 즉각 세척이 이뤄진다. 혹시 모를 오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이와 함께 환자가 탄 항공기 역시 소독을 하지 않으면 공항 어디로도 이동할 수 없다.
이날 마침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112번 게이트를 방문했다. ‘게이트검역’을 보기 위해서였다. 장관과 취재진의 방문에 검역관들은 브리핑과 검역 시연 준비로 부산한 모습이었다. 중국 정부가 우한시에 대해 사실상 봉쇄 조치를 내리고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 항공편의 변동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고 해서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마침 메르스 특별검역 기간이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검역관이 해야 할 일은 많고 손은 항상 부족하다.
“고생들 많으십니다. 지난번 환자는 이곳에서 이송한건가요?” 박 장관이 묻자 책임자인 B검역과장이 대답했다. “네, 바로 여기 112게이트였습니다. 기침은 없었지만 다른 이상 증상이 발견됐고 공항 내 체류 기간이 길어져서 이송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장관의 말. “검역 때 발견해서 다행입니다. 위험도가 높아졌으니 안정될 때까지 고생 좀 해주세요.”
B과장은 기자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검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굴은 퀭하고 머리도 감지 못해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다.
◇ “최대한의 방어”
장관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묻고픈 것은 많았지만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았다. 112번 게이트 앞에 장관이 자리를 잡자 카메라가 일제히 장관을 비췄다. 장관의 곁에는 검역관들이 서있었다. 조금 어색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기자가 물었다.
- WHO 긴급위원회가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을 선포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검역 수준도 바뀌나요?
“긴급회의 결과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회의 결과가 하루면 나오는데 연기한 것은 중국 내부 상황을 면밀히 보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선포의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습니다. 선포가 되면 우리나라도 검역 단계를 격상해야 하겠지만, 이미 우린 검역 격상에 준하는 수준의 (높은) 검역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 겁니다.”
- 질병관리본부에서 오늘(23일) 역학조사관을 현지에 급파했는데, 중국 CDC와의 협조는 어떻게 이뤄집니까, 자체 조사도 하나요?
“한 명이 (정보 수집) 활동하기에는 제한적일 겁니다. 우한시에는 2000여명의 유학생과 교민이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폐렴 증상이나 감염이 발견될 경우, 신속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죠.”
- 교민보호도 중요하지만, 중국 정부가 감염병 정보 제공에 소극적이란 의견이 많습니다. 특히 사람간 감염 가능성처럼 정확한 정보 확보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한·중 CDC 사이에는 핫라인이 있습니다. 한·중·일 사이에도 소통채널이 있고요. 감염병 정보는 긴밀히 협조하도록 협약도 맺었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정보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정보를 제한적으로 발표하고 있어, 전화로 주고받는 정보도 제한적입니다. 때문에 WHO와 우한시총영사관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정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후 장관은 공항 내 경전철을 타고 제1터미널 여객동 동편의 고정검역대로 이동했다. 장관과 현장 검역소 직원과의 대화. 그 직원은 인력 부족을 토로했다. “원래 2명이 고정검역대에 상주하면서 한 명은 발열체크를, 다른 한 명은 건강상태 질문지를 수거했는데, 메르스 특별검역이 겹쳐서 지금은 한 명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도쿄발 비행기에서 내린 입국자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장관은 ‘호흡기질환 주의사항 안내문’과 질본 1339 번호가 적힌 물티슈를 입국자들에게 나눠줬다. 10여분의 홍보 활동은 그렇게 얼추 마무리되는 듯 했다. 끝나기를 기다려 장관에게 소감 한 마디를 청했다. “국민들께서 검역에 협조적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홍보를 할 생각입니다. 검역관들이 사명감을 갖고 좀 더 노력한다면 이번 사태를 잘 넘어갈 것 같습니다.”
함께 온 복지부 관계자들은 이만 끝내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소감보다 더 듣고 싶은 대답은 따로 있었다. “아까 검역관이 인력 부족을 호소하던데요.” 장관이 다소 난감한 듯 멋쩍어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지난해 인력 증원이 있었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현장인력 보강은 중요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만….”
그렇게 취재는 끝이 났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하늘에서 지상으로 비행기는 쉴 새 없이 뜨고 내렸다. 사투는 비단 바이러스 때문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