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받아가세요” 홍대로 나간 박미선 [현장읽기]

“세뱃돈 받아가세요” 홍대로 나간 박미선 [현장읽기]

기사승인 2020-01-25 08:00:00

“미선 누나, 새해 복 많이…어흑!”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다리가 아슬아슬 흔들리더니 이내 맥없이 땅으로 꺼진다. 소년은 ‘어제 연습할 땐 분명 잘 됐는데’라며 발을 굴렀다. 그의 앞에서 고운 한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여인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박미선(54) 되시겠다. 박미선은 지난 22일 서울 와우산로 홍대 놀이터에서 시민들에게 세배를 받고 용돈을 주는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지난 10일 개설한 유튜브 채널 ‘미선임파서블’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세배에도 ‘등급’이 있다. 큰절은 ‘일반절’, 한복을 입고 절을 하면 ‘한복절’, 그리고 대망의 ‘그랜절’. 물구나무를 선 상태로 “미선 누나·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완창해야 ‘그랜절’이 완성된다. 박미선은 세배 등급에 따라 세뱃돈도 ‘차등 지급’한다. 일반절은 1만원, 한복절은 3만원, 그랜절은 5만원을 준다. 단, 세배 도전 횟수는 1회로 제안하고, 한복을 입고 그랜절을 해도 그랜절만 인정하기로 했다. 제한된 제작비 안에서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미선임파서블’ 관계자에 따르면 박미선과 제작진은 ‘설 연휴에 맞춰 시민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자’며 이번 이벤트를 준비했다. 애초 제작진은 참여 인원을 500여명으로 예상했지만, 웬걸.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벤트 소식이 알려지면서 홍대에는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벤트 시작 예정 시간인 오후 2시가 채 되기도 전에 수백 명의 시민이 홍대 놀이터에 우글댔다. 대부분 SNS와 유튜브에 친숙한 10대와 20대였다.

26세 동갑내기 커플 김혜빈·신민수 씨는 이날 오전 서울 사직로 경복궁 인근에서 한복을 빌려 입어 홍대에 왔다. ‘한복을 입고 오는 것이 민망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신 씨는 “사람이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살 순 없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면서 “재미와 추억을 쌓고 싶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미선 언니가 꼭 ‘100만 유튜버’가 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왕과 내시 차림의 여성들도 있었다. 홍대 놀이터 인근 퍼즐팩토리의 아르바이트생 제하경(25) 씨와 최유진(24) 씨였다.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제 씨와 최 씨는 금세 “전~하. 사람이 너무 많사옵니다”라며 포즈를 잡았다. 제 씨는 “원래는 근무시간인데 ‘가게를 홍보하고 오겠다’는 조건으로 사장님이 보내주셨다”며 웃었다.

이벤트는 애초 공지된 놀이터가 아닌 경의선 책거리에서 시작됐다. 뒤늦게 장소를 알게 된 시민들이 한꺼번에 책거리로 몰려가면서, 현장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벤트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서울 영등포의 지역아동센터에서 초·중학생 4명을 데리고 온 한 교사는 “행사가 주먹구구 식”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3시경 중단된 이벤트는 1시간여 만에 놀이터로 장소를 바꿔 재개됐다. 이번에는 줄을 서서 세배에 참여하게 해 진행이 한결 원활해졌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이어진 이벤트에는 200명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미선은 “내가 오늘 얼마나 ‘플렉스’(뽐내다)했는지 알아?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즐거워했다.

‘미션 임파서블’ 같았던 ‘그랜절’에 성공한 시민들도 꽤 많았다. 기자가 본 첫 그랜절 성공자는 윤 건(20) 씨. 윤 씨는 “무용을 전공해서 물구나무서기는 평소에도 많이 한다”면서 “점찍어둔 가방이 있는데, 세뱃돈을 보태 사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선임파서블’ 관계자는 “그랜절에 도전하신 분들의 80% 정도는 성공하신 것 같다”고 귀띔했다. 비보이 댄스와 결합한, ‘업그레이드 그랜절’도 나왔다. 주인공은 유튜브 채널 ‘티라노시티’를 운영하고 있는 유범상(31) 씨였다. 유 씨는 “새해를 맞아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고 시민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다”면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멋있게 그랜절을 하고 싶었다”고 미소 지었다. 대신 세뱃돈 5만원은 받지 않았다. 그는 “뜻깊은 행사인 만큼, 세뱃돈도 뜻깊게 쓰고 싶었다”며 “사연이 있는 분께 드리고 싶어서 (제작진에게) 후원금으로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박미선은 시민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해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했다. 참여 인원이 많아 시민들과 긴 대화는 어려웠지만, 박미선은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벤트를 마친 그는 쿠키뉴스에 “걱정 많이 했는데 사고 없이 잘 끝나서 다행이다. 어린 친구들의 밝은 기운으로 무척 기분 좋았다. (어린 참가자들이) 굳이 거창한 계획 없이 밥 먹고 PC방 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 솔직하고 당당하고 예뻤다”면서 “‘미선 임파서블’ 많이 응원해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