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당시 ‘슈퍼전파자’로 불린 14번 환자에 대한 ‘늑장 대응’을 둘러싼 삼성서울병원과 정부의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삼성서울병원이 이겼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법원은 메르스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근본적인 원인이 삼성서울병원의 잘못된 대처가 아닌, 병원과 당국 사이의 소통이 조금씩 어긋난 데 있었다고 봤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806만원의 과징금을 취소하고 607억원의 손실보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 소송은 메르스 유행 당시인 2015년 5월 29일 14번 환자가 메르스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 대응 과정을 두고 시작됐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삼성서울병원에 14번 환자의 접촉자 명단과 연락처를 달라고 요구했다. 병원은 2일 뒤인 같은 달 31일 밀접 접촉자 117명의 명단을 제출했다. 전체 접촉자 678명의 명단은 6월 2일에 넘겼다.
복지부는 삼성서울병원이 명단을 늦게 제출한 것에 대해 업무 정지 15일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다만 환자들의 불편을 고려해 806만원의 과징금으로 업무 정지 처분을 갈음했다. 이와 함께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사태 당시 진료 마비로 입은 손해액인 607억원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보상하지 않았다.
이에 삼성서울병원은 과징금 부과와 손실보상금 지급 거부 처분 모두를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당시 14번 환자의 접촉자 명단이 늦게 통보된 것이 질병의 확산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실제 14번 환자는 81명을 3차 감염시켰고 이 중 16명이 사망했다. 또 3차 감염자 중 4명으로부터 17명의 4차 감염자도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성서울병원이 감염병예방법상 금지된 ‘역학조사 거부·방해·회피’를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서울병원과 당국 사이에 '연락처가 포함된 명단'을 두고 명확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봤다. 당국이 필요로 한 것은 접촉자들에게 메르스 감염 가능성과 주의사항 등을 알릴 수 있는 연락처였다. 그러나 6월 2일 이전까지 질병관리본부가 ‘연락처가 포함된 678명의 전체 명단’을 요구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은 감염관리팀에서 접촉자의 이동 경로와 노출 추정시간 등 20개가 넘는 항목의 자세한 내용을 담았지만, 연락처 항목은 빠져 있었다. 이 부분은 원무팀에서 작성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수차례 명단을 요청할 때마다 명시적으로 연락처를 요구하지 않았고 6월 2일에 명시적으로 연락처 명단을 달라고 요구했다. 병원은 곧바로 이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종합해보면, 삼성서울병원에 역학조사를 방해하겠다는 ‘고의’를 발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보건복지부 측의 실수도 메르스 사태의 확산에 한 가지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6월 2일 삼성서울병원이 전체 명단을 제출했지만, 복지부는 6월 6일에야 이를 지역보건의료정보시스템에 입력했다. 재판부는 “통상 5일인 메르스 잠복기를 고려하면, 당국이 6월 2일 명단을 제출받아 곧바로 접촉자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76번 환자에 의한 4차 감염이 예방됐을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고 매체는 전했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