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이후 통금·버튼은 이쑤시개로…‘외출 금지령’ 항저우의 일상

11시 이후 통금·버튼은 이쑤시개로…‘외출 금지령’ 항저우의 일상

기사승인 2020-02-14 06:02:00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1355명. 5만9493명.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13일 0시 기준 발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와 확진자 숫자다.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중국 정부는 ‘초강수’를 뒀다. 저장성 당국은 원저우, 항저우, 닝보, 타이저우 등 4개 도시 주민에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또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도록 결혼식과 장례식을 금지했다. 이 같은 조치도 부족해 보건당국은 약국에서 기침약 등 일부 의약품 판매를 중단시켰다.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이 자체적으로 약국에서 약을 구입해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다.

숨 막히는 당국 규제와 코로나19로 인한 공포 속에서 주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지난 9일부터 저장성 항저우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 김모(30)씨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을 통해 만났다. 

항저우시는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약 7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본사 등 중국 대표 기업들이 몰려 있는 대도시지만 코로나19를 피하지 못했다.

김씨는 중국에 입국한 이후부터 내내 항저우시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재택근무 중이다. 아파트에 들어온 당일 한 번 외출한 것 이외에는 집 밖을 나간 적이 없다. 지난 4일부터 내려진 외출 금지령 때문이다.

김씨는 “외출을 하려면 당국 지침을 받아 아파트 관리실에서 제작, 배포한 ‘통행증’이 필요하다”면서 “한 가정에서 이틀에 한 명이 식료품 구매를 위해서만 외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동네통행권’이라고 적힌 초록색 통행증에는 기간이 명시돼있고 공식 도장이 찍혀있다. ‘이틀 동안 한 가구당 한 사람이 표를 쓸 수 있고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라’고 적혀있다. 이를 어기고 돌아다니면 공안에 체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거 단지 단위로 거주자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김씨가 사는 아파트는 관리실이 주민들의 외출을 관리한다. 김씨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와 바깥 사이 출입은 오로지 한 곳으로만 가능하다. 다른 출입구들은 모두 폐쇄된 상태다. 

아파트 주민이 통행증을 들고 가면 경비원이 신분증을 함께 확인하고 발열 검사를 한다. 문제가 없으면 내보내 주는 식이다. 외부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도 과정은 똑같다.

외출 시간 마저 정해져 있다. 출입문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만 개방된다. 김씨는 “제시간에 귀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른다. 겁이 나서 정해진 시간 내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에는 이쑤시개 통이 배치됐다. 버튼을 누를 때 손으로 접촉하지 않기 위해서다. 외출할 때 마스크는 기본이고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다. 시내 마트를 포함해 패스트푸드 체인점들까지 신분증 검사를 하고 연락처를 기재한 뒤 발열검사까지 마쳐야 들어갈 수 있다. 김씨는 “아무래도 주민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추적이 가능하도록 이런 정보를 기입하게 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김씨가 보여준 감염자 위치와 숫자를 집계하는 애플리케이션에는 지난 11일 기준, 추가 2명, 확진159명, 완치 51명이 떴다. 김씨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불과 1.8km 떨어진 곳에서도 감염자가 나왔다고 애플리케이션이 알려줬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3일 오전 9시 기준 28명이다. 

도시는 침묵 속에 잠겨있다. 광장에서 ‘방역 중이니 오랜 시간 머물지 말고 빠른 시간 내 복귀하라’고 흘러나오는 방송이 그나마 들리는 소음이다. 김씨는 “거주하는 아파트 근처에 대학이 위치한 만큼 유동인구가 평소에는 많은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면서 “한마디로 도시에 사람이 없다”고 했다. 길에는 통행증을 이용해 식료품을 사러 나온 이들 외에는 보기 힘들다.

정부의 지나친 통제에 대한 반발은 없을까. 김씨는 “중국 내에서도 확진자나 사망자 데이터를 정부가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숨긴다고 의심하는 이들이 일부 있다”면서도 “온라인상에서는 반발 여론이 있기는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이를 표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목소리 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있다”며 “한편으로 지금 같은 비상사태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포자기’ 심정이 더 큰 것 같다”고 풀이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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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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