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미술에세이](1) 눈이 내리니 고향이 그립다

[이승훈 미술에세이](1) 눈이 내리니 고향이 그립다

기사승인 2020-02-19 19:09:56

글:이승훈 대성중학교 교장, 한국화 화가

▲ 모처럼 눈이 내렸다. 하얀 세상을 꿈꾸는 자에게 행복을 내려주는 선물이다. 거짓으로부터 진실을 솟구치게 하고 아픔으로부터 진정제를 안겨주는 듯한 맑고 깨끗한 모습은 저 동심으로 달려가게 한다. 나이 들면서 나이를 잊게 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시슬레는 ‘눈 내리는 루브시엔’을 그렸다. 눈이 막 그친 것처럼 거칠고 투박한 붓 자국이 느껴진다. 골목 끝으로 한 사람이 있다. 봄을 기다리다 못해 찾아 나선 사람으로 보인다. 담장 위로 나뭇가지마다 눈이 소복하게 쌓여 봄날 매화나 벚꽃이나 아몬드꽃처럼 보인다.

이 그림은 파리의 북쪽에 있는 루브시엔에서 그린 것이다.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가는 길에 있는 마을이다. 루이 14세가 사냥하였던 숲이 있었다. 피사로와 시슬레가 자주 찾아서 그림을 그린 곳이라고 한다. 프랑스와 프로이센 간 전쟁 이후 1872년경부터 4년 정도 살게 되는데 전쟁이 막 끝나서 복구 중이던 마을이다. 눈 내리던 마을 골목뿐만 아니라 즐겨 찾던 카페와 창가에서 바라본 거리의 모습 등 자신이 거주하던 곳을 그렸었다.

 시슬레는 프랑스에서 태어났는데 영국 국적으로 살았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끝내 프랑스 귀화 허락을 받지 못하고 59세에 암으로 죽었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로서 900여 점의 유화를 남겼으며 대표적인 활동을 하였으나 살아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사후에 더 빛을 본 화가이기도 하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그의 그림이 프랑스를 대표하게 되었었다.

시슬레, 눈 내린 루브시엔느, 1878, oil on canvas, 61x50cm, 오르세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알고 그림을 그렸던 화가이다. 인간이 살면서 부유하게 사는 것이 행복일 것이라는 것은 저속한 것일 수도 있다. 전쟁 전에는 아버지의 지원으로 생활이 부유했으나 이후에는 빈곤 속에서 작업하고 명성도 없이 살았던 화가이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살았던 곳에서 그림으로 남겼다. 홍수가 지면 홍수 속의 마을을 그렸고, 눈이 내리면 눈 속의 풍경을 그렸다. 그림으로 웃고 우는 그의 시대와 환경 정신이 그대로 그림 속에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였다.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한다는 것. 죽음을 맞이하는 심리 단계를 퀴블러 로스(1926~2004)는 5단계 심리 과정을 말하였다. ‘분노(denial)-분노(anger)-타협(bargaining)-우울(depression)-수용(acceptance)’과정이라고 한다. 다른 정신과학자는 더 많이 과정을 추가하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심리 과정에서 ‘이별은 똑같이 나타난다’라고 김형경 심리학자는 말하였다.

 우리네 죽음은 전통적 장례식에서 우는 것을 통용하였다. 김형경의 ‘좋은 이별’책에서 3일 동안 죽은 사람 곁에 머물고 억지로라도 ‘아이고, 아이고’ 곡하고 장례 후 일주일간 상석 올리고 49일 동안 일곱 번 떠난 사람의 평온을 빌어주는 것이 겉치레로 보았으나 남은 사람들의 상실감을 쓰다듬어주는 절차였음을 밝히고 있다. (좋은 이별, 김형경, 푸른숲, 2009)

일본인은 웃는 것은 좋지만 슬퍼하거나 우는 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이츠키 히로유키가 지은 타력에서 밝힌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노모는 자기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나라를 위해 잘 죽었습니다”라며 조용히 미소 짓고, “내년 봄에 야스쿠니 신사 벚꽃 나무 아래서 만납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군국의 어머니를 다룬 미담으로 신문의 콘 표제가 되어 칭송받던 시대가 있는데, 이런 풍조는 전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이츠키 히로유키, 타력, 지식여행, 2012. P.142) 슬프게도 억압된 자신을 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자식을 잃었으면 통곡은 못 해도 하소연을 해야지.

그리고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말로 대신했다.“유머의 원천은 비애이며 슬픔이다.”라고 말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관점을 통해 비판하고 살아가는 방식이야말로 감동의 원천이다.(P.144, 윗글) 웃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함을 말이다. 밝힐 것은 밝혀야 한다. 그래도 늦지 않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내리니 고향이 그립다.

홍재희 기자
obliviate@kukinews.com
홍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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