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천명쯤이 조금 안되게, 고만 저만한 부락 백여 개를 이루고 살아가는 마을, 공장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청정 산골마을, 포도를 비롯한 온갖 과일이 맛있게 영글어가는 고장, 충청북도 영동군의 학산이라는 마을입니다.
학산면 치맥계를 평정한 호oo 치킨은 '만선'이란 동생이 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의 아들이 하는 가게입니다. 한식 중식 양식 등 세 개의 조리사 자격증을 갖춘 조리사답게, 혹은 그 자격증과는 전혀 상관없는 맛있는 통닭을 튀겨냅니다.
개점 초기 손이 모자르다는 이유로 한 발을 밀어 넣었던 할배 만선이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매일 저녁마다 아들의 튀김기계에 매이고 말았습니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올해까지만 하면서 말입니다만, 얼마 전 손주를 얻어 그 해방의 날은 점점 더 요원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선이는 학산에서 인삼 농사를 제일 넓게 짓는 대농이고 또 조령마을 이장이기도 하니 도대체 얼마나 바쁘고 심란하겠습니까?
하지만 만선이의 진짜 심란함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바로 배달입니다.
도시 사람들에게 배달이란 그저 음식값에 추가되는 요금 정도나 지연 사고 등이 떠오르지만, 이곳 학산의 '배달'은 아주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주로 이렇습니다.
"아~ 감나무 있는 집 있잖아~"
"둥구나무에서 쪼옥 내려와 불 켜진 집~"
"있잖아~ 파란 기와집~"
가보면 맨 감나무고, 둥구나무고, 파란 기와집이라 좌절하고 맙니다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약과입니다.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 몰라? 그 옆 집!"
학산이 반경 수십 킬로이고 독립 부락이 백여 개인데... 그 어느 마을,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을 어찌 알겠습니까?
햇수가 꽤 오래 지나,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만으로도 머리속의 네비게이션이 작동한다면 모를까....
그래도 만선이는 매일 저녁 고라니도 멧돼지도 가끔씩은 박아가며 열심히 배달하고 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같은 밤은 치맥이 땡기는 밤입니다.
내가 사는 이곳은 어디라고 해야 배달이 올까요?
"비오는 날 끝내주는 집 있잖아~" 하면 혹시 무사히 당도할까?
만선이가 오면 내가 그에게 늘 하는 농담, 그 농담을 오늘도 할 것 같습니다.
" 담배 피다 걸리면 제수씨한테 꼬질를거야!"
그런데 이때 정말 재미있는 건 만선이가 정말 그 말을 진지하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 그래, 일를래면 일러~ 괜찮아~
그리고,
왠지 난, 세상에서 유일하게 만선이에게만 건내는
'꼬지른다'는 단어가 옆구리가 간지럽도록 귀여워... 웃습니다.
ㅋㅋ
이병도 (농부/희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