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코로나19 사태로 가계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이들에겐 날개도 없었다. 대한민국 경제중심지 서울 번화가 곳곳에서조차 텅 빈 상가가 늘어나고, 임시휴업을 내건 가게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거리에서 만난 슈퍼, 의류점, 맛집 주인들은 휴업 혹은 폐업 고민에 밤잠을 설친다.
아직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이들도 “유통기한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식구니까”,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 있어서” 등의 이유를 들며 드문드문 가계를 찾는 손님을 기다리며 문을 열어두는 실정이다.
족발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식당점주는 “밤이 돼도 손님이 없다. 많아야 하루에 3~4테이블이 전부다. 솔직히 월세만 800만원에 세금도 1억원을 냈다. 나가야할 데는 많은데 일하는 식구들도 외면할 수 없고, 문을 닫을 수도 없고 정말 걱정이다. 지금 상황 같으면 장사 접어야하는데…”라며 말을 잊지 못한 채 한숨만 내쉬었다.
◇ 정부 지원책, ‘지역사랑상품권’과 ‘저금리대출’이 사실상 전부
국민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는지 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실행할 자금 확보를 위해 ‘긴급추가경정(추경) 예산’을 편성해 지난 5일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추락하는 이들에게 날개가 돼주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약 31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쓰겠다고 밝혔다. 추경으로는 11조7000억원을 신청했다. 문제는 이들의 대부분이 가계경제, 민생경제 일선에 직접 지원되는 형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부 추경예산안을 살펴보면 11조7000억원 중 3조2000억원은 부족한 세입을 메우기 위한 예산이다. 결국 실질적으로 소요되는 재정은 8조5000억원 뿐이다.
여기서 가계경제 혹은 민생경제에 도움이 되는 예산은 ‘감염병 검역·진단·치료 등 방역체계 보강 및 고도화’를 위한 2조3000억원을 뺀 6조2000억원이 전부다. 이마저도 모두 ‘소모예산’이 아니다. 당장 중소기업·소상공인 회복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책정된 2조4000억원 중 대부분은 ‘대출예산’이다. 심지어 ‘이자’도 받는다.
여기에 민생·고용안정 지원이라며 내놓은 대책에는 ▲저소득층(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수급자) 대상 지역사랑상품권(17~22만원), 8506억원 ▲아동수당 대상 특별돌봄쿠폰(지역사랑상품권 10만원), 1조539억원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중 보수 30% 지역사랑상품권 수령자 추가 20% 상품권 지급, 1281억원이 들어있다. 모두 상품권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밖에 ▲고효율 가전기기 구매금액 10% 환급, 3000억원 ▲고용보험기금 국고지원 2000억원 추가확대 ▲피해지역 특별고용 안전대책 지원, 1000억원 ▲대구·경북 중소기업 R&D(연구개발) 및 맞춤형 바우처 지원, 318억원 ▲지역사랑상품권 한시적 국고지원율 상향, 2400억원 ▲지방교부세 및 교육재정교부금 지원, 2897억원 등도 추경예산에 담겼다.
◇ 정부 추경안에 정치권과 가계는 ‘한숨’과 ‘한탄’만
이처럼 추경안에서 실제 지출예산은 4조원 가량인 셈이다. 이에 추경안을 심의하고 있는 국회조차 예산규모가 부족하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밖으로 이해찬 대표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해임건의설이 나돌 만큼 정부안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심지어 6조원 이상의 추가증액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각 상임위에서 심사했던 증액 사항이 약 6조3000억~6조7000억원 규모인데 최소한 이 정도의 증액은 반드시 반영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전한데 이어 13일 코로나19국난극복대책위원회·선거대책위원회 연석회의에서도 추경예산안 증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게다가 국회에서는 ‘고효율 가전기기 구매금액 환급’이나 ‘고용보험기금 국고지원금 확대’, ‘지방교부세 및 교육재정교부금 지원’, ‘상품권 배부’ 등이 민생 및 가계경제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난색을 표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재정건전성과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최대한의 예산을 편성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박주현 민생당 공동대표는 13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에서 ▲자동차 개소세 감면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 환급 ▲취업지원 등의 추경항목을 꼬집으며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겠냐”고 질타했다. 이어 이들 예산을 줄여 소상공인과 피해가정에게 ‘긴급재난수당’과 같은 현금지원 형태의 직접 지원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촉구했다.
서울의 한 전통시장 관계자도 중·소상공인 피해 직접지원 방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 후 기자와 만나 “지금 정부가 내놓은 지원방안은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없는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고 혹평하며 “당장 숟가락 들 힘도 없는 상인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일단 긴급 수혈이라도 해주고 버티라고 해야 할 것 아니냐”고 한탄했다.
이미 경기악화로 대출을 받을 만큼 받아 정부의 지원대출을 신청할 수도 없을뿐더러 당장 생활비가 없어 허덕이는 상황에서 추가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부담에 허리가 휘는 게 아니라 끊어질 것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내몰렸다는 설명이다. 그는 “다 도움이야 되겠지만 기초체력이라도 있어야 버티며 기다려볼 것 아니냐. 코앞이 낭떠러지”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장사를 하고 안하고, 가게를 접고 안 접고를 걱정하는 이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는 점이다. 보다 직접적인 생계고민에 빠진 이들이 추경안 사각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근로자나 정기적 수입이 없는 프리랜서, 아르바이트생과 영세사업체에 속한 계약직들, 여기에 115만명에 달하는 실업자까지 다양하다.
강남에서 발렛파킹을 했다는 한 남성(37)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파리 목숨이다. 이미 강남은 발렛파킹이 사라졌다”며 “일자리는 사라지고 사람들이 돌아다니질 않으니 대리운전 자리도 구하기 힘들다. 나이가 있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아르바이트 구하는 곳도 별로 없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 누가 우리를 지원해주냐”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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