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제주시 추자면의 상추자도 풍경

제주도에서 1년…제주시 추자면의 상추자도 풍경

기사승인 2020-04-25 08:52:21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며 궂은 날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놀러 온 이들에게는 반가울리 없는 날씨지만 이 비와 바람은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물이 귀한 제주의 들을 촉촉하게 적시고, 수확을 앞둔 양파와 마늘의 살이 토실하게 오르도록 한다. 이 비에 고사리가 쑥쑥 자라기 때문에 제주에서는 ‘고사리장마’라 부른다.

4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제주엔 말 그대로 고사리가 지천이다. 주말에 별 생각 없이 오름을 찾아가다가 통통하게 살 오른 고사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한 움큼이 되었다. 오름에 올라 주변 경치를 보고 발아래 꽃을 살피며 능선을 걷고 내려와 다시 길가의 풀 섶을 살펴 고사리를 찾아냈다. 그렇게 걷다가 요행으로 아직 손을 타지 않은 고사리 밭을 만났다. 부들부들한 고사리 순이 마구 올라오고 있었다. 배낭이 묵직해지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고사리를 꺾었다. 무릎과 허리를 끝없이 굽히고 펴야 하는 고사리 꺾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적당히 고사리가 익을 정도로 삶아 찬물에 헹구면 된다는데, 적어도 고사리 삶아내는데 있어서 ‘적당히’보다 어려운 말은 없는 듯했다. 어두워져서야 고사리 삶기가 끝났다. 밤바람을 쏘이고 다음날 한나절을 더 말리고 나니 그 통통했던 고사리가 마치 검은 실처럼 쪼그라들었다. 문득 지난해 용눈이오름에서 고사리를 사며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고사리 꺾어 말리기가 얼마나 힘든지 친언니에게도 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 물질, 밭일에 고사리 꺾기까지 제주 여인들 삶의 고단함은 끝이 없는 듯하다.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45살에 사람들이 농담 삼아 말하던 사오정이 되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런 저런 질곡을 겪으며 말 그대로 빈손이 되어 있었는데 직장마저 잃었을 때는 한 순간 한 순간 숨쉬기도 버거웠다. 그러나 거의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어야 하는 어머니와 그러한 어머니를 보살피는 ‘동년배와 비교해 폐기능이 51 퍼센트 정도’의 아버지 앞에서는 그러한 버거움조차 사치였다.

하찮고 작은 일이라도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부터 그간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의 기꺼운 도움을 받았다. 직장을 잃고 한 해가 지날 무렵에는 다시 시작한 번역 일로도 그럭저럭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나고는 다시 취업해 보겠다는 생각을 지우고 있었다. 그 무렵 취업제의가 들어왔다. 현직에 있을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이들의 추천이 있었지만 당시 어머니의 건강이 순간적으로 위중해진 탓에 정해진 기한 내에 서류를 접수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름 내내 거의 의식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던 어머니가 가을바람이 불며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하더니 9월 중순 어느 날 눈웃음마저 머금은 눈길로 ‘너만 취직하면 걱정이 없겠다’고 말했던 그날, 거짓말처럼 다시 연락이 왔다. 일단 이력서를 팩시밀리로 보내고 면접에 참석하라는 전화통화 후 다음 달부터 다시 대학병원의 홍보팀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47살의 나이에 다시 교직원으로 근무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의 걱정거리 하나가 사라졌다.

때로 ‘살면서 그럴 일이 있을까’ 하는데 나로서는 추자도 여행이 그러했다. 제주에서 1년을 지내겠다고 왔을 때만 해도 추자도에 갈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올레를 걸으면서 기왕이면 전 코스를 걸어내자고 마음먹고 보니 추자도는 반드시 다녀와야 할 섬이 되었다.

제주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추자도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배가 크다고는 하나 한 시간이나 배를 타 본 적이 없으니 멀미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일찍 도착해 멀미약을 사먹고 편안하게 배에 올랐다. 파도가 잔잔해 거의 흔들림을 느끼지 않았지만 앞자리에 타고 있던 어린이가 구토하는 모습을 보고는 미리 멀미약 먹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배가 움직이는 동안 밖에는 일렁이는 물 뿐이니 모두들 TV를 보거나 눈을 붙일 뿐이다.

여객선이 상추자항에 들어와 사람들이 내리고 항구 일대가 잠시 인기척이 일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첫날 상추자도의 올레를 걷고 하추자도의 신양항 근처의 숙소까지 걸어야 하니 조금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항구 주변의 식당에서 마주한 상차림은 의외였다. 특히 넉넉하게 올라온 조기 구이와 가시엉겅퀴 된장국은 물론 그 주변에 놓인 소소한 반찬들이 입맛을 당겼다. 추자도가 제주에 속해 있지만 말씨와 음식 등 생활 풍습은 전라도를 많이 닮았다는데 이 허름한 식당의 상차림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추자도는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중심으로 주변에 사람이 사는 추포도와 황간도 그리고 사람이 살지 않는 크고 작은 섬 38개로 이루어져 있다. 섬의 크기는 하추자도가 더 크지만 상추자도의 항구 근처에 면사무소와 학교 등이 있다. 면사무소 문 양쪽에 서 있는 하르방이 이곳도 제주에 속한 섬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면사무소 뒤의 학교 담장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 최영 장군 사당이 있다. 최영 장군 사당은 여러 곳에 있는데 그가 출생한 홍성,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진을 쳤던 통영시 사량도, 공민왕 때 제주에서 일어난 목호의 난을 토벌했던 제주시 애월읍 등에도 있다. 이 중 추자도의 사당은 목호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제주도로 향하던 최영 장군이 이곳에 잠시 머물며 그물로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준 은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백중날과 섣달 그믐날 풍어와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

최영장군 사당을 지나 언덕위로 오르니 까마득한 절벽이다. 그 아래 푸른 바다에 추포도와 횡간도가 제법 크게 보이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그 너머 북동쪽으로 희미하게 그림자처럼 보이는 섬이 보길도라 한다. 그 길에서 바닷가로 돌출된 곳에 제단이 있다. 기꺼산의 이 제단에서도 섣달 그믐날에 동서남북의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며 주민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빈다고 한다. 육지에서도 멀고 제주에서도 먼 이 섬에서 무탈하게 물고기 많이 잡는 일 만큼 간절한 소망이 또 있을까 싶다.

상추자도 북쪽 해안가를 도는 길은 때로는 숲속의 오솔길이 되었다가도 한 순간 푸른 바다를 가슴에 하나 가득 담아낸다. 그 길이 다무래미에 이르면 거기가 이 섬의 북쪽 끝이다. 그리고 썰물이 되어야 건너갈 수 있는 섬이 그 너머에 있다. 때로 걸어서 갈 수 있다고 하니 아직은 반만 섬인데, 물결에 바위가 깎이고 깎이며 상추자도에서 떨어져 섬이 되어가고 있다.

돌아 나와 걷는 산 능선 끝에 서면 상추자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봉글레산 정상이다. 높지는 않아도 사방에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일품이다. 올레를 잠시 벗어나 사람들이 ‘나바론 하늘길’이라 부르는 절벽을 바라볼 수 있는 용둠벙전망대에 올랐다. 어떤 이유로든 추자도에 왔다면 저 ‘나바론 하늘길’을 걷거나, 적어도 이 전망대까지 수고스럽게 와서 서늘한 바닷바람을 품에 안고 저 절벽과 그 위의 길에 선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후회가 없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쿠키뉴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truealdo@kukinews.com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