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혜택 못 받는 ‘희귀질환’…위험분담제 문턱 높아

건보 혜택 못 받는 ‘희귀질환’…위험분담제 문턱 높아

23일 ‘희귀질환 극복의 날’ 맞아 지원 정책 점검해야

기사승인 2020-05-22 03:00:00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매년 5월 23일은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지만 환자들의 치료 접근권 보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희귀질환 극복의 날은 지난 2015년 희귀질환관리법이 통과‧시행되면서 희귀질환 인지도와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지정됐다. 희귀질환관리법 시행 5년차를 맞았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비싼 약값으로 인한 낮은 치료 접근성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희귀질환 대부분은 ‘위험분담제(RSA)’가 아니면 건강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절차가 없지만, 현행 규정은 희귀질환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해 환자 상당수가 급여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실정이다.

‘생존 위협’ 기준 안 맞아 급여 문턱 못 넘어

‘위험분담제’는 고가의 항암제, 희귀난치성질환 치료제 등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13년 12월 도입됐다. 대상 약제는 대체가능하거나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제품 또는 치료법이 없는 항암제 및 희귀질환치료제 중 ‘생존을 위협할 정도(진행성이 심각한 질환 또는 기대여명이 2년 미만인 경우)’의 심각한 질환에 사용되는 약제다.

그러나 최근까지 위험분담제를 통해 급여 등재에 성공한 희귀질환 치료제는 3개에 불과하다. ‘희귀질환’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현행 규정 때문이다.

중증 희귀질환은 당장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 아닐지라도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키고 지속적 치료가 필요해 약제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또 희귀질환의 80% 이상이 유전적, 선천적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제 보장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환자 및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희귀질환은 암, 심장질환, 뇌질환 등 3대 중증질환과 달리 사보험이 전무해 국가건강보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신홍반루푸스로 10년째 투병 중이라고 밝힌 한 환자는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50년 만에 개발된 루푸스 치료제 ‘벤리스타’에 대해 보험적용이 필요하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청원자는 “루푸스는 완치가 없는 질병이다. 50년 만에 미국 FDA승인을 받은 치료제가 출시됐지만 국내 급여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1년 치료비가 2600만원정도다. 집에 여유가 있지 않다면 치료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가격 때문에 우리나라 시장에서 퇴출위기라는 말도 나왔다.루푸스를 앓고 있는 2만여 명의 환자들의 꿈이 무너지지 않게 벤리스타 약제를 급여화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생존을 위협하는 질환의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 위험분담제 적용이 어려웠고, 루푸스 질환 특성상 장기 침범 및 진행 양상이 환자별로 매우 다양해 경제성평가 모델의 비용효과성을 통한 보험 급여 등재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루푸스라는 병 자체가 경증, 중증의 범위가 너무 넓어 타겟을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회사측과 대화를 많이 했고, 회사측도 일정 부분 조정해 다시 한 번 위험분담제 신청에 나서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환자 수 적어 경제성평가 수행 어려워

정부가 이러한 위험분담제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3월 23일 ‘약제의 결정 및 조정기준’ 일부개정고시안을 입법예고한 상태이나, 문제는 개정안에 적용되는 범위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개정안에는 ▲위험분담제 후발 의약품 적용 ▲경제성평가면제 및 3상 조건부 허가의약품(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위험분담제 적용 등의 내용이 담겼으나, 후발 의약품의 경우 치료적 위치가 동등하면서 동시에 비용효과적인 약제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희귀질환은 말 그대로 ‘희귀’질환이기 때문에 환자 수가 적어 임상자료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경제성평가 수행도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개발된 희귀질환 치료제가 극히 드물고, 치료제가 있더라도 비용효과성 입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특히 대체제가 없는 약제는 위약과 비교하게 되는데, 효과 차이가 클수록 더 오래 투여함으로써 비용 격차가 벌어져 비용효과성 입증이 어렵다. 진단과 치료과 어려운 희귀질환에 있어 ‘경제성’ 논리 하에 다른 질환과 같은 기준으로 치료제 접근성을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환자들의 보장성 강화 및 신약 접근성 확보를 위해 환자 기대여명이나 경제적 효과성 등의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대신 희귀질환이라는 ‘예외성’을 인정하는 유연한 접근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와 가족들의 눈높이에 제도가 못 따라가는 부분은 있지만 정부 나름대로 암 및 희귀질환자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 꾸준히 제도를 보완하고 개선하고 있다”며 “하지만 같은 병이라고 해서 경증, 중증 구분 없이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장기간 생존할 수 있는 질병과 급격히 진행되는 질병은 다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위험분담제 등 보장성 강화 차원으로 입법예고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의견 수렴 후 보완할 부분은 보완해 나가겠다”며 “일례로 얼마 전 급여 등재된 중증 아토피치료제 듀피젠트는 암 또는 희귀질환이라고 규정하기 모호한 질환이었으나 위험분담제로 분류했다. 정부는 위험분담제 범위를 넓히려는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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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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