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양균 기자 = 매년 7월2일은 17세 소년의 기일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12월 온도계를 만드는 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석 달하고 17일이 지나 의사는 소년의 병을 수은 중독으로 의심했다. 당시 온도계에는 수은이 쓰였다. 석 달 반이 지난 7월2일 새벽 결국 소년은 사망했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고(故) 문송면이다. 32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문송면이 산다. 1980년대보다 산업재해는 줄어들었다는데 왜 아직도 수많은 문송면은 죽어가고 있을까.
전국의 문송면들은 죽는 순간까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른다. 더 이상 온도계에 수은을 넣지 않지만, 물류공장의 서른여덟 명 문송면들은 불에 타서 죽고, 스무 살 문송면은 폐기물 파쇄기에 끼여 죽었다. 죽은 문송면은 있는데, 죽인 기업은 없다. 문송면들이 죽어 나가도 일터는 책임지지 않는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이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의 하청을 주면, 원청은 하청 업체 노동자가 다치고, 설사 목숨을 잃어도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왜곡된 산업구조와 이를 제재할 법이 없음을 이르는 서늘한 말이다. 그동안 노동계를 중심으로 일명 ‘기업 살인법’ 제정 운동이 진행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긴 했지만, 국회 문턱을 통과한 적은 없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도 위험의 외주화를 원천차단하지 못하고 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기업과 탐욕과 무책임을 단죄하지 못하면 억울한 노동자의 죽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언론노동자요, 글을 읽는 무수한 랜선 너머 독자들의 대다수도 노동자일 것이다. 비단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의 말을 빌지 않아도 기업이 초래한 위험과 재난, 이 악순환의 고리를 왜 끊어야 하냐면 바로, 노동자인 우리가 살기 위해서다.
생존권은 기본권이다. 원치 않는 죽음을 막는 것은 정부가,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다. 올해는 고 문송면의 32주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지 않는다면, 지금 어디에선가 또다른 문송면이 일터에서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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