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김구라가 이번에도 사과할까. 개그맨 남희석이 김구라의 진행 방식을 ‘배려가 없다’고 공개 비판한 지 5일이 흘렀고 그사이 많은 일이 벌어졌다. 남희석이 “자존감 무너져 나 찾아온 후배(개그맨)들”을 언급하며 김구라에게 “약자들 챙기시길”이라고 지적하는 동안, 언론은 ‘남희석 때문에 개그맨을 그만뒀다’는 홍석천의 과거 발언을 발굴해 보도했고, 홍석천은 이를 부인하며 “앞뒤 맥락은 빠지고 자극적으로 포장”된 기사에 유감을 표했다. 한편 MBC ‘라디오스타’ 제작진은 김구라를 비호하는 장문의 공식입장을 냈다. 언론은 이제 남희석이 과거 여성 연예인의 SNS에 남긴 댓글을 토대로 그를 ‘후배를 성희롱한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다.
저열한 자는 누구인가. 여성 연예인의 수영복 사진에 ‘나도 모르게 확대해봤다’고 한 남희석의 댓글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희석 흠집 내기로 논점을 흐리는 언론은 과연 정의로운가. 문제의 수영복 사진이 해당 연예인의 SNS에 올라왔을 당시, 언론 역시 “시선 강탈 섹시미” “다이어트를 부르는 핫바디”라는 표현으로 이를 기사화했다. 이번 남희석 보도에서 나온 표현을 인용하면, 한쪽에선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다른 한쪽에선 성희롱을 거론하는 언론의 보도행태야말로 “내로남불”이고 “흑역사 소환”이다.
그리고 한 사람, 김구라는 말이 없다. 다만 ‘라디오스타’ 제작진이 나서서 방송에 나오는 김구라의 모습은 하나의 캐릭터라고 설명했을 뿐이다. 제작진의 입장은 이랬다. “김구라 씨의 경우, 녹화가 재미있게 풀리지 않으면 출연자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반대 질문을 하거나 상황을 만들어가며 매력을 끌어내기 위한 진행 방식으로 캐릭터화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남희석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비판해온 것이 바로 그 ‘캐릭터’다. “초대 손님이 말을 할 때 본인 입맛에 안 맞으면 등을 돌린 채 인상 쓰고 앉아 있”는 캐릭터,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거나 상대에게 면박을 주느라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캐릭터, 자리에 없는 이들을 이야깃거리로 삼는 캐릭터,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무리하게 상대를 압박하는 캐릭터, 타인의 성취를 자신의 잣대로 후려치는 캐릭터. 그에게 ‘배려가 아깝다’는 표현은 차라리 정중하다.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가 초대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무례하다.
그간 논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김구라는 과거 강지영에게 애교를 강요해 눈물을 뽑아냈다가 입길에 올랐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당장 결혼 생각이 없다”는 탁재훈에게 거듭 “만나는 사람이 배씨여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 어쩔 것이냐” “남녀 관계가 스며들다 보면 친구가 될 수 있겠냐”고 밀어붙인다. 3년 전엔 김생민의 라이프스타일을 조롱했다가 시청자들에게 하차 요구를 받고 사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술사 이은결 앞에서 “마술사들에게 호주머니 있는 옷을 입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할 만큼 타인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권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김구라는 28년차 남성 방송인이자, 국내 최장수 토크쇼의 MC이기도 하다. 그는 누구에게든 말로 상처를 입힐 수 있지만, 누구에게도 지적받지 않을 수 있다. ‘독설가 캐릭터’는 김구라의 이런 위상을 토대로 지속된다. 자신은 누구의 이야기에든 끼어들 수 있고 누구의 말이든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 재미가 없다면 “개망신”과 “쪽”(창피함)을 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근거, 자신의 잘못에는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근거, 삿대질 쯤이야 습관일 뿐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가 그의 위치에서 나온다. 김구라를 둘러싼 논란을 단순히 호불호의 차이로 축소할 수 없는 이유다.
‘라디오스타’의 네 MC들은 매주 “다음주에 만나요, 제발”이라는 인사로 방송을 맺는다. 10년 전, MBC ‘무릎팍도사’에 밀려 일정한 방송 시간을 할애받지 못하던 시절에 만든 인사말이었다. 당시만 해도 비주류를 자처하던 ‘라디오스타’는 이제 국내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손에 꼽히는 화제성과 영향력을 가진다. 김구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올바름에 대한 시청자의 감수성은 10년 전보다 훨씬 더 정교해지고 복잡해졌다. 어쩌면 김구라는 남희석의 말처럼 “이제 등 안 돌릴게”라며 상황을 우습게 정리할 수도 있다. 사과를 할 수도, 아무일 없듯 넘어갈 수도 있다. 다만 그가 이번 상황을 단지 ‘해프닝’ 쯤으로 여긴다면, “몇몇 짬 어린 게스트들은 나와서 시청자가 아니라 그의 눈에 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그게 좋다면, 지금처럼 해도 된다.
wild37@kukinews.com / 사진=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