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과 함께 ‘국민청원’ 게시판을 개설하며 내놓은 국정운영 철학 중 하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운영철학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점점 부실해지는 답변에 때론 제대로 응답하기는커녕 제대로 듣지 조차 않는 행태가 속속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중순 영국의 유력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는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자신들을 향한 비판은 받아들이지 않는다”였다. 이를 두고 윤희석 미래통합당 부대변인은 “귀를 열고 국민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비평했다.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도 “왜 현 정권을 두고 진보의 탈을 쓴 극우라고 칭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지, 적폐를 처단한 집단이라고 자부했던 현 정권을 향해 신 적폐세력이라고 지칭하는지, 스스로 경계하고 국민에게서 시선을 떼선 안 된다”고 질타했다.
외국계 한 언론과 야권이 문재인 정권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혹은 헐뜯기 위해서 혹평을 내놓은 것일까? 취재과정에서 경험한 청와대 일원들의 행태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마치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 ‘나는 선이요 너는 악’이란 말을 실천하는 언행을 이어왔다.
당장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강조하며 개설한 ‘국민청원’ 게시판의 운용부터가 의혹투성이다. 지난달 12일 스스로를 ‘티끌 같은 사람’이란 의미의 ‘진인(塵人)’으로 칭한 조은산이 상소문의 형태로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담은 ‘시무 7조’를 청원했지만 공개되기까지 15일이 걸렸다.
이마저도 본지에서 19일 기사화한 이후 수십차례의 입장청취 노력에도 응답하지 않던 청와대가 중앙언론 여러 곳을 통해 문제제기가 집중된 후인 27일에야 공개됐다. 공개 당시 공개지연에 대한 이유로는 “욕설이나 특정인에 대한 비방 등 비공개 사유를 검증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 같은 답변 또한 청와대를 출입하는 몇몇 언론에게만 제한적으로 전달했을 뿐이다. ‘소통’을 강조한 대통령의 국정철학과는 다소 동 떨어진 행태다. 심지어 최근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윤재관 당시 부대변인은 국민의 알권리까지 거론하며 답변을 요구했지만 “청와대 출입 등록매체가 아니면 답을 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고수했다.
지난해에 이어 지난 4월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청원글 공개 기준 등 운영규칙을 청와대 대표번호, 공식 전자우편 나아가 국회의원들을 통해 요구했지만 5개월이 돼가는 지금까지 청와대가 응답하지 않은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답변이었다. 나아가 이코노미스트와 야권이 그렇게나 문 정권의 소통문제를 지적하고 강도 높게 비난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분명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이 참여하는 국정을 천명했다. 차별과 소외가 없는 사회, 소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의 문재인 정부와 청와대는 대통령의 의지와는 달리 흔히 ‘주류’로 통하는 혹은 ‘목소리가 큰’ 집단의 이야기에만 반응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대화와 소통’에도 상대의 격을 따지고 차별하는 청와대. 소수의 피해나 불만은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정부. 이런 모습을 대통령이 꿈꾸고 바라며 만들어왔던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몸에 좋은 약이 쓰듯 비판하고 지적하는 말들도 듣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지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말한 ‘협치’의 기본이고, 대통령이 약속한 나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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