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해양수산부 소속 8급 공무원인 이모씨(47)가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시신은 태워져 한 줌의 재가 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게 됐다.
하지만 군 당국은 그를 ‘월북 희망자’로 규정하고, 대통령은 심각한 안보상황에서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할 군인들의 노고를 다독이고 사기를 높여야할 ‘국군의날’ 행사에서 북한을 향한 경고는커녕 당부의 말 한 마디 남기지 않았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일보다 6일 앞서 개최한 ‘국군의날’ 행사 기념사에서 ‘평화’와 ‘강한 군대’를 강조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에도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그렇지만 이씨의 사망에 대한 유감표시나 규탄의 의미를 담은 단어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심지어 북한을 직접 지칭하는 단어조차 언급이 없었다. 같은 기념사에서 6번의 평화와 4번의 코로나(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를 거론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정치권을 비롯해 일선 국민들 사이에서 실망과 분노를 담은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이 씨의 피살사실이 전해진 다음날인 25일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면서도 북한의 직접적인 위해에는 애써 외면하며 무력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다.
피살된 이씨처럼 어린 두 아이의 어머니라는 한 시민은 “국군의 날 행사를 보면서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저렇게 대통령에게 충성을 외치며 나라를 지키겠다고 젊디젊은 나이에 군에 입대해서 온몸을 바쳐 나라에 충성하는데, 저런 충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통령은 추미애 장관 아들일이며 해수부 공무원 북한만행이며 일언반구 없이 그저 북한과의 평화만 외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심지어 “그저 정권유지와 퇴임 후 본인의 안위만을 생각해 정의와 공정을 포장한 공수처 설치와 검찰개혁에만 박차를 가하고, 민생은 뒷전에 세금만 미친 듯이 올리고 자기편만 무조건 옳고 자기편이 아닌 국민은 다 적폐로 몰고 있다”며 “어린 아들 둘을 가진 엄마로 이 나라가 정말 우리 아들을 지켜줄 수 있을지 너무 걱정이 된다. 해수부 공무원 일도 너무 마음 아프고, 문 대통령이 정말 치가 떨리게 싫다. 이 죗값을 어찌 다 치를는지 지켜보겠다”고 경고했다.
정치권도 나섰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기념사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은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취해야 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대단히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실망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나아가 “불과 3일전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야만적으로 피살된 천인공노할 만행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 앞에 직접 아무런 말이 없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군 통수권자로서 국군의날 기념식을 하면서도 직접적인 말 한마디가 없었다”면서 “북한 앞에만 서면 왜 이렇게 저자세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국민의당도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심지어 홍경희 국민의당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도 수정할 시간이 없었냐”면서 “대통령의 연설문은 절대로 수정될 수 없는 돌판에 새기는 영구적인 비문인가. 어떻게 이 엄중한 시국에 서해 피격사건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연설문만을 읽어 내려갈 수 있단 말이냐”고 한탄했다.
이어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군의 흉탄에 죽음을 당하고 해상에서 불에 태워진 천인공노할 사건 앞에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너무 큰 문제가 보인다. 아직까지도 국민들의 분노를 체감하지 못하는 대통령과 보좌진들은 제발 정신을 차리고 본질을 직시해 주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군의날 행사를 앞당겨 거행한 점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기념일인 10월 1일이 추석 당일이라는 이유로 6일을 앞당겨 25일 개최한 것을 두고 한 야권 인사는 “굳이 6일이나 앞당겨 행사를 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선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심각한 안보위협이 발생했는데 연기 검토나 유감표명 한 줄 없는 것은 정말 군 통수권자로서 자격을 의심하게 된다”고 했다.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