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코로나19보다 무서운 ‘허탕’

[가봤더니] 코로나19보다 무서운 ‘허탕’

'오늘은 허탕치면 안되는데' 캄캄한 인력시장

기사승인 2020-10-15 05:00:02
-새벽 인력시장, 차도까지 밀려난 구직자들
-최근 청년, 중장년층까지 몰려
-근로자들 사이 치열한 몸값 경쟁
-절반 이상 돌아가는 구직자들

13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 밀집지역.

[쿠키뉴스] 박태현 기자 = “오늘 하루는 어쩌지...”

지난 13일 아침 6시, 30분 전만 해도 일감을 찾기 위해 일용직 근로자들로 붐볐던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2번 출구 앞은 다시 한산해졌다. 결국 오늘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거나, 삼삼오오 모여 자판기 커피로 차가운 몸을 녹이고 있었다.

13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사무소장 주변으로 구직자들이 붐비고 있다.

이른 가을 추위로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한 13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앞에는 임시 일용직 근로자들이 인력사무소 주변을 가득 메웠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인력시장은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 건설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는 일용직 인력공급시장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이로 인해 구로구청은 매일 수천 명의 인원이 몰리는 상황을 고려해 인원이 많이 모이는 새벽 3시 30분부터 6시까지 관리자들을 현장에 파견해 '코로나19' 감염예방 지원에 나서고 있다. 현장지원을 나온 한 관계자는 “3달 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일거리를 찾기 위해 모여드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근로자들이 많이 몰리는 피크타임 보다도 더 이른 시간 현장에 출근해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관리 감독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구로역 2번 출구 앞에 이른 새벽부터 구직자들이 일거리를 찾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다.

구직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지난 12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됐지만 지속적인 취업난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력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는 중국인 근로자들이 주를 이뤘지만, 요즘에는 한국인 근로자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남구로역 인근 인력사무소 주변에서는 잡부나 전문 기술, 자격증을 소지한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몸값 흥정을 벌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일용직 근로자들은 일거리를 선점하기 위해 새벽 3시부터 인력사무소나 남구로 역 2번 출구 인근에서 대기한다. 절반 이상의 구직자들은 건설 현장으로 나가며 전문 기술이나 자격증이 있는 근로자들의 경우 일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특혜를 받는다. 근로자들은 하루 평균 1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 기술이나 자격증이 있는 근로자의 경우 20만원까지도 일당을 받는다. 인력사무소를 거쳐 구직에 성공한 경우 10~20%의 수수료를 제외한 급여를 받게 된다. 인근에서는 몸값을 흥정하느라 높은 언성이 들리기도 했다. 보통 목수나 용접공 등 숙련 기술자의 경우 하루 일당은 20만원 안팎이고 일반 건설 현장을 나가는 잡부는 10만원 정도 지급을 받지만, 2~3만원을 낮춰서라도 일하려는 모습들도 보였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을 구한 근로자가 승합차에 탑승한 채 대기하고 있다.

새벽 6시, 일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쉬움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력시장을 찾은 대다수의 구직자들은 전문 기술이나 자격증을 갖추기보단 일반 건설 현장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인력시장을 찾는다는 40대 한 근로자는 “요 며칠 일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나도 이 바닥에서는 나름 젊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까지 유입해 경쟁이 치열하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 인력사무소 한 관계자는 “5시 30분이 넘어서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한국말이 서툰 중국 동포들의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럼에도 다음날 나오는 것을 보면 절박함이 느껴진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한 근로자가 작업복이 든 가방을 메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날은 밝아왔고 남은 사람 중 일부는 다 마신 빈 종이컵을 연신 구겼다 폈다 반복하다 결국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pth@kukinews.com
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박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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