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모스’는 브린이 지난 8월 시작한 ‘모스’ 시리즈의 두 번째 음반이다. 힙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실크’를 조합해 만들었다. 브린은 “내가 느끼는 알엔비와 힙합의 느낌을 담아보려고 했다”고 소개했다. 앞서 발매한 ‘벨벳모스’(VELVETMOTH)의 감성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브린은 “‘벨벳모스’를 만들 땐 가사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실크모스’는 애티튜드(태도)와 전반적인 분위기, 그리고 사운드, 편곡에 특히 신경 쓴 음반”이라고 말했다.
브린은 올해 3월부터 ‘모스’ 시리즈 음반을 기획했다. 처음 세 달은 학습의 시간이었다. 자신에게 영감을 줄 만한 노래들을 모아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가 재생 목록에 넣어둔 음악만 약 1200곡. 브린은 “곡의 분위기가 내 몸에 베어들기”를 바라며 연구하듯 여러 노래를 섭렵했다. ‘성식한 창작자’라고 칭찬하니 브린은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근면성실’”이라며 웃었다.
“‘모스’ 시리즈는 일종의 명함이에요.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음반이요. 한동안 ‘사람들은 왜 내게 ‘빡센’ 랩만 원할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저도 이해해요. 만약 제가 강한 랩이 아닌 음악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강타했다면 다른 음악을 원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한편으론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제가 늘 ‘매운 맛’일 수는 없잖아요. 매번 강한 랩만 해야 한다면 너무 스트레스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담아보려고 했어요.”
중학생 때 노래방에서 윤미래의 ‘검은 행복’을 부르다가 ‘재능이 있다’는 친구들의 칭찬에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페이스북에서 래퍼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모조리 친구 신청”을 해 힙합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됐다. 2018년 첫 싱글을 내고 Mnet ‘쇼미더머니’ 시리즈에도 거듭 도전해 시즌8에서 톱8까지 올랐다. 유명 힙합 레이블에서 영입 제안을 받은 적도 있지만, “저 자신이 완성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에 지금은 홀로 활동 중이다.
브린의 또 다른 직업은 유튜버다. 겟TV 채널에서 제작하는 ‘브린의 연봉협상’을 진행하며 여러 여성 아티스트들과 교감하고 있다. 특히 힙합 신에서 활동하는 여성 음악인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뭉클해진단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어떻게 음악을 하고 있고 얼마나 고생하는지 다 알아요. 거기에서 느껴지는 끈끈함이 있죠.” 최근엔 이영지, 하선호, 재키와이 등 여성 래퍼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 래퍼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다. 브린은 “(여성 래퍼로 성공한) 선례가 많지 않아 힘들긴 하다. 하지만 (여성 래퍼가) 뭘 해도 재밌는 포지션이긴 하다”고 했다.
랩과 보컬에 두루 능하고 프로듀싱도 할 줄 알지만, 정작 브린은 “재능은 나와 거리가 먼 단어”라고 했다.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땐 ‘음치’에 ‘박치’단다. 대신 그는 노력에 힘을 쏟았다. “간단해요. 그냥 저의 미숙함을 인정하면 되죠. ‘난 아직 멀었네. 그래도 여기에서 오는 매력도 있지 않을까?’라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원하는 완벽함의 경지에 평생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좌절하진 않는다.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브린은 말했다.
“힙합이 빈민가의 흑인들에게서 시작됐잖아요. ‘나는 이런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래도 나는 멋있고 쿨해’라는 게 힙합의 태도 같아요.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되, 그것과 조화를 잘 이루는 것 말이에요. 뻔한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남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때릴 수 있다면 제 음악은 오래 남겠죠. 누군가의 공감을 잘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wild37@kukinews.com / 사진=CTM·브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