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오과다(五果茶)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오과다(五果茶)

박용준 (묵림한의원 원장, 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

기사승인 2020-12-11 16:39:01
▲박용준 원장
뒤주에 갇혀 비운의 삶을 마친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는 만성 기침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 정적들의 눈을 피해 아들을 왕으로 등극시키기까지 인고의 삶을 살았다. 눈물과 한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혜경궁 홍씨의 건강은 좋았을 리 없다. 특히 만성 기침으로 고생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녀는 폐에 문제를 지녔다. 효자인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오과다(五果茶)를 올리게 하였다.

오과다는 호두, 은행, 대추, 밤, 생강 다섯 가지 약재를 큰 배 한 개와 함께 넣어 정성스럽게 달인 일종의 약차(藥茶)이다. 맛과 효능이 뛰어나며 부작용이 없어 혜경궁 홍씨의 오랜 기침 증상을 다스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처방되었다. 한의학에서는 폐의 기능을 마음의 상태와 연관 짓는다. 슬픔이나 우울함은 폐의 정기를 손상시킨다. 슬픔으로 인하여 눈물을 많이 흘리면 진액이 고갈되고, 폐에 사기(邪氣)가 몰려들어 몸이 허약해져 끊임 없이 기침을 하는 만성 기침 증상이 생긴다. 

왕실의 사무를 기록한 일기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왕을 비롯한 왕실 구성원들의 질환을 다스리기 위해 쓰인 다양한 처방이 기록돼 있다. 그중 기침에 대해서 가장 여러 차례 언급된 처방이 바로 ‘오과다(五果茶)’이다. ‘오과다’는 ‘오과차’라고도 읽는데, 보통 오과다(五果茶)로 읽는다.  

정조가 가장 아끼고 신임한 어의(御醫) 강명길이 저술한 『제중신편(濟衆新編)』에 오과다(五果茶)는 ‘노인의 허한 기운을 북돋아 주고, 감기로 인한 기침을 다스린다(老人氣虛,外感咳嗽)’고 기록되어 있다. 재임 기간 12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어 식목왕(植木王)으로 알려진 정조는 의학에도 조예가 깊어 『제중신편(濟衆新編)』의 저술에도 상당 부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과다(五果茶)의 처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소한 맛과 함께 몸에 유익한 불포화 지방산이 많은 호두(胡桃)는 폐를 촉촉하게 만들어 몸에 필요한 진액을 보충해 준다. 은행(銀杏)은 기침으로 지친 폐를 다스려준다. 밤의 한자는 율(栗)인데 밤은 신장을 이롭게 하는 과실로 들뜬 기를 아래로 되돌리는 작용을 한다. 

이때 밤의 속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야 약효를 볼 수 있다. 생강(生薑)은 냉기를 제거하여 폐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대추의 약명은 대조(大棗)인데 대추는 진액을 생성하여 위장의 기능을 도와준다. 


대추는 미조(美棗), 홍조(紅棗)라고도 하고 ‘나무에서 나는 꿀’이라 하여 목밀(木蜜)이라고도 한다.
『시경(詩經)』에 ‘음력 8월에 대추를 수확한다(八月剥棗)’라는 시구가 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대추는 오래전부터 우리네 삶과 함께한 귀한 과일이며 약재임을 알 수 있다. 

‘하루에 대추를 세 알씩 먹으면 평생 늙지 않는다(一日吃三棗,終生不顯老)’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대추는 우리 몸에 좋다. 또한 대추의 단맛은 다른 약재들과 조화를 이뤄 허약해진 기를 올려주고 비장의 기능을 기른다(大棗味甘 和百藥 益氣養脾).

대추의 단맛은 불안증과 불면증 등의 신경안정에도 효과가 있다. 신경이 예민하여 깊은 잠을 들지 못하는 증상을 완화하는데 대추가 좋다.

오과다를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호두 10알, 은행 15알, 마른 대추 7알, 생밤 7알, 생강 7쪽, 큰 배 한 개를 2L 정도의 물에 넣어 2시간 이상 약한 불로 끓인다. 식힌 후 냉장 보관한다. 먹을 때 꿀이나 흑설탕을 한 티스푼 넣어도 좋다.

오과다를 끓일 때 하얀 거품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대추 속 사포닌 성분이 거품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추의 사포닌 성분은 염증을 줄이고,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작용을 한다. 대추에 함유된 비타민 C와 P는 피를 맑게 해주고 산성화를 막는다. 특히 비타민 P는 비타민 C의 작용을 도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고혈압과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예방한다.

비타민 P는 수용성비타민의 하나로, 플라보노이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열에 약하고 쉽게 파괴되는 비타민 C의 안정화를 도와서 비타민 C의 주요 효능인 활성산소 제거와 노화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한의서에는 ‘대추는 비장의 기능을 돕고 위장을 조화롭게 하여, 진액을 생성하여 기혈의 부족을 채워주며, 마음이 불안하고 떨리는 증상을 다스리며, 특히 아녀자들의 히스테리 증상을 다스리며 다른 약들의 독성을 제거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气血津液不足,補脾和胃,益气生津,治胃虚食少,脾弱便溏 心悸怔忡,妇人臟躁解藥毒 

이렇게 한의학에서는 약재들을 한약 형태뿐 아니라 부작용 없이 오래 마실 수 있는 차(茶) 형태로도 많이 이용해 왔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여기저기서 폐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의 발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럴 때 맛있는 오과다(五果茶) 한잔으로 면역력을 올리고 폐의 기능을 북돋아 치료하는 효능을 느껴보면 좋지 않을까?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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