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시간의 필리버스터, 막말·무관심·비방 속 윤희숙의 일침

89시간의 필리버스터, 막말·무관심·비방 속 윤희숙의 일침

‘닥쳐3법’ 통과됐지만… 이면의 ‘민주주의 퇴보’와 ‘입법부의 추락’ 비판
전문가 및 시민들, “여물지 못한 정치의 민낯 속에 홀로 빛났다” 호평도

기사승인 2020-12-15 05:00:04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진행 중인 국회 본회의장이 몇몇 의석을 제외하고 텅 비어있다. 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2020년 12월 14일 오후 10시. 이른바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또는 ‘김여정하명법’으로 명명된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9일부터 89시간 5분동안 진행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도 법개정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열린민주당에 정의당, 심지어 민주당 소속 국무위원까지 동원돼 강제종료 시키기 전까지 이어진 필리버스터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의회, 정치사에 남긴 족적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선명했다.

특히 지난 11일 오후 7번째 토론자로 나서 12일 오전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감염우려로 중단되기 전까지 총 12시간 47분 동안 반대토론을 진행해 역대 최장기록을 깨고 ‘철의 여인’이란 별칭을 얻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새긴 발자국은 누구보다 깊었다.

한 정치학 교수는 “이번 필리버스터는 3가지 측면을 역사가 기록할 것”이라며 “필리버스터의 단초가 된 정부여당의 독주와 독단,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드러난 막말·비방·무관심으로 점철된 우리정치의 미성숙함, 그리고 윤희숙 의원이 보인 우리정치의 가능성”이라고 꼽기도 했다.

‘토론’과 ‘합의’, ‘조율’이라는 정치적 도구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모두 무시하고 본인만 선(善)이고 타인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아래 상대를 비방하고,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의견과 주장을 들으려 하지 않았던 후진성과 폭거를 역사가 강하게 질타할 것이란 지적이었다.

나아가 민주당이 보인 민주적 절차와 체계의 파괴를 세계적 석학인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과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 ‘자유론’과 ‘대의정부론’ 등을 남긴 존 스튜어트 밀, 대한민국 진보정치의 대부로 꼽히는 최장집 고려대학교 교수의 말들을 인용해 비판하고 미래정치에 대한 화두를 던진 윤 의원을 향한 호평이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필리버스터 역대 최장시간 기록을 갱신했다. 이후 윤 의원을 향해 ‘철의 여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사진=연합뉴스

◇ 필리버스터 최장시간 기록갱신보다 ‘내용’ 주목받아

이 같은 평가는 국민의힘 동료의원들이나 국민들의 반응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김병욱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의원이 단순히 시간만 끈 게 아니라 문재인 정권이 무너뜨린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우리 민주주의가 나아갈 바를 국민 앞에 당당히 밝혔다”는 평을 올렸다. 

박수영 의원도 “‘철의 여인’ 정말 수고 많았다. 12시간을 넘는 길이도 길이지만 내용의 깊이와 호소력 있는 목소리까지 정말 세계 최고였다”는 찬사의 글을 남겼다. 최형두 의원은 “필리버스터 수준을 바꿔놨다. 단락마다 편집해서 특강 교재로 쓸 수 있을 정도”라고 극찬했다.

윤 의원의 필리버스터 방송을 끝까지 지켜본 후 감상을 남긴 네티즌들도 다수였다. 한 네티즌은 “여야당 불문하고 논리적 근거도 없이 목소리와 완력으로 정치하려는 사람이 많았었다. 그런데 윤 의원은 많이 다른 것 같다. 그의 필리버스터 발언을 들으니 도시빈민의 애환을 다룬 조세희의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생각났다”고 평했다.

윤 의원이 ‘다수가 법률을 만드는 특권을 가지면서, 자기들은 법률을 무시하는 권리까지 요구하면 이건 이상한 체제가 돼버린다’는 토크빌의 문구를 인용해 윤 의원이 ‘닥쳐3법’으로 명명한 법안의 처리과정에서 보인 민주당의 폭주를 비판한 발언을 인용하며 공룡 여당에 비해 힘없는 여의도 빈민신세지만 변화를 불러올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기도 했다.

일부는 윤 의원의 필리버스터에 대한 비난과 무시로 점철된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층의 평가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올바른 이야기를 해도 들으려 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지적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낙담부터 “필리버스터 라이브 채팅글 보면 반박과 비판은 없고 원색적 비난만 가득했다. 진짜 알바인가 싶기도 하더라”는 후담을 내놓기도 했다.

586 운동권을 겨냥해 ‘정치인을 과거 행적만으로 평가하지 말고 지금 내놓는 정책과 입법활동으로 평가해야한다”는 윤 의원의 말을 인용하며 공감을 표현하는가 하면, “뼈 때리는 연설”, “진심과 실력을 가진 언어의 힘은 대단하다”,“존재감 확실하다”, “이정도로 국민을 생각하는 국회의원이 몇이나 있을까” 등의 호평이 이어졌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내용적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사진은 필리버스터를 마치고 단상을 내려온 윤 의원을 향해 동료 의원들이 격려해주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8만번 이상 시청된 윤 의원의 필리버스터 내용 속 ‘송곳’들

그리고 일련의 호평은 윤 의원의 필리버스터 속 발언들이 계속해서 공유되고 단일 영상이 7만건 이상 시청되는 이유로도 보인다. 이처럼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는 윤 의원의 발언 중 날카롭게 강렬한 발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단연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국정원법’과 ‘남북관계발전법’,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통칭해 ‘닥쳐3법’이라고 칭하며 던진 말이다.

윤 의원은 해당 법안을 ‘닥쳐3법’으로 지칭하게 된 배경을 두고 “국가가 개인에게 닥치라고 하는 느낌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의 기본권과 그에 대한 제한을 두고 가지는 서로 다른 생각과 문제를 충분히 토의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해야함에도 정부여당이 재갈을 물리고 그저 따르라고 명령하는 듯 한 내용과 입법과정이었다는 비난이다.

둘째로 거론되는 영상 속 발언은 국회와 국회의원, 민주주의의 자세와 역할을 강조하는 발언이었다. 그는 지난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임대차3법의 실패를 언급하며 “ 날치기로 법 통과시킨 후 역사적 실패를 가져왔다. 그럼 거기서 현대적 함의를 끌어내야한다”며 ‘겸손’과 ‘입법부’라는 자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절차는 다수가 다수로부터 소수를 보호하는, 그리고 국가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마지막 장치’라는 토크빌의 말을 인용해 “인류보편의 원칙이라는 것(기본권)을 존중하고, 절차를 준수하며, 법을 통해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의 사명이자 존립이유에 충실해야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공유되는 수많은 영상 중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는 영상 속 발언은 송영길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속칭 ‘586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이들에 대한 일침이었다. 윤 의원은 토론에서 송 의원이 ‘탈북민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욕해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다’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말을 강하게 질타하며 국회의원의 본질과 평가에 대한 말이었다

그는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민주화 운동 했다는 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냐.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도대체 누가 허용하고 결정하냐. 과거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이들이 하던 짓을 똑같이 하고 있다”며 “핵심은 과거에 무엇을 했든 여기(국회)에 와 있는 사람은 지금이 언행과 얼마나 민주적 법을 만들었는지, 국민의 민생을 실제 개선시키는 법을 만들었는지로 평가돼야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박진영 상근부대변인은 윤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두고 “윤 의원님! 엄중한 코로나 위기상황에, 남의 책 읽으면서 필리버스터 기록 깨서 행복하십니까. 결국 필리버스터 기록을 깨면서 본인의 수준까지 보여줬다”면서 윤 의원이 ‘책 읽어주는 정치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필리버스터 제도를 희화화했다는 혹평을 내리기도 했다.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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