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한데 모인 여성 록 뮤지션 ‘여기 우리의 목소리가 있다’②

[쿠키인터뷰] 한데 모인 여성 록 뮤지션 ‘여기 우리의 목소리가 있다’②

“우리가 상상하는 권력은 ‘권유하는 힘’”

기사승인 2020-12-17 07:00:14
▲ (왼쪽부터) ‘위, 두 잇 투게더’ 음반에 참여한 김민정, 카코포니, 김지원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반가움과 통쾌함이 뒤섞여 웃음이 터졌다. 국내 첫 여성 록 컴필레이션 ‘위, 두 잇 투게더’(We Do It Together) 음반을 재생한 지 10초 만에 말이다. 음반 첫 곡 ‘나는 깜빡’(가수 애리)의 첫 가사 때문이었다. “생각해봤어. 왜 다 죽이고 싶은지, 나는”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하나 뿐이 아니었구나! 하지만 잠시 뒤, 서글픔과 연민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끓어올라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실 나는 살고 싶어, 너와. 사실 나는 살고 싶어, 너무. 사실 나는 웃고 싶어, 너와. 사실 나는 웃고 싶어 마냥….”

이어지는 밴드 에고펑션에러의 ‘판’은 훨씬 날카롭게 분노를 드러낸다. “술에 취했다는 변명, 같지 않은 변명. 창창하다 면죄, 가장이라 면죄” 보컬 김민정은 신랄한 목소리로 “두 눈과 귀를 가리고 심판의 날을 휘두르는” 판사들을 직격한다. 음반 마지막에 실린 밴드 빌리카터의 ‘헬’(HELL)은 또 어떤가. 홍콩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10대 소녀가 경찰에게 체포된 뒤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건을 직접 거론하며 ‘21세기 버전의 지옥’을 겨냥한다. ‘위, 두 잇 투게더’의 총 감독이자 에고펑션에러 보컬인 김민정의 말처럼 “분노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Q. 예상보다 직설적인 가사가 담겨서 놀랐어요.

“확실하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판사한테 문제 많다. 우리나라 법, 문제 많다.’ ‘n번방’ 사건 때도 SNS에 ‘판사도 공범이다’라는 해시태그가 퍼졌잖아요.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있었고, 저도 그 부분을 긁어주고 싶었어요. 사실 저 같은 애가 떠든다고 눈 하나 깜빡하겠어요? 하지만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김민정)

Q. 그리고 위위위 기획단이 말한 것처럼 목소리는 모일수록 커질 테니까요. 그나저나, ‘위위위’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요?

“빌리카터 언니들이랑 같이 지은 이름이에요. 언니들이 당시에 추천해준 노래가 하나 있었는데….”(김민정)

“‘위 아 위’(We Are We)’. 저희 레이블(일렉트릭뮤즈) 컴필레이션 음반에 실었던 노래였어요. ‘우리는 우리다. 우리는 우리로 살아간다’는 게 기획단의 키워드였어요. 민정 씨가 ‘위 위 위’(WE WE WE)를 뒤집으면 ‘미 미 미’(ME ME ME)가 된다는 연결고리를 찾아냈죠. 우리 안에 내가 있고 내가 모여서 우리가 된다, 나를 위한 것과 우리를 위한 것은 다르지 않다는 의미를 담았어요.”(김지원)

▲ ‘위, 두 잇 투게더’ 음반 제작을 위해 지난 8월 열린 간담회 / 사진=유튜브채널 까까컴퍼니 캡처
위위위 기획단은 2018년 기획자 조한나씨와 함께 여성·퀴어 음악가를 위한 공연시리즈 ‘서클스’(Circles)를 만들었고, 2019년에는 주체적으로 창작하고 활동하는 여성 음악가들을 위한 네트워킹 파티도 열었다. 이번 음반을 위해서는 김민규 일렉트릭뮤즈 대표,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의 유모라 기획팀장, 커뮤니티 아트 콜렉티브 ‘손과얼굴’의 강정아 등이 힘을 보탰다.

Q. 위위위 기획단의 활동에 대한 창작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달라져 왔나요?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든지….

“그러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단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규모를 키우기보단 내실을 다지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요. 이들의 음악이 자신의 생을 살리고 주변도 살릴 수 있도록, 말 그대로 ‘생업’이 될 수 있도록. 지금 모인 뮤지션들이 각자 잘하는 일을 더욱 잘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게 저한테는 더욱 의미 있는 활동인 것 같아요.”(김민정)

Q. 행사에 모인 뮤지션들의 공통적인 욕구랄까요, 바람은 무엇이던가요?

“일단, 옆에 있는 카코포니 씨는 도대체 음반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었죠.(웃음) 인디 뮤지션들 모두 DIY(Do It Yourself)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거든요. 그런데 ‘혼자’의 한계에 부딪혀서 활동을 더 이어가지 못하는 분들이 생겨서 아쉬웠어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꺼내놓으면, 설령 그것이 자기에겐 맞지 않는 방법이었어도 다른 누군가에겐 필요한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경험들을 많이 나누길 바랐어요.”(김민정)

Q. 세 분은 자신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을 언제 가장 강렬하게 느끼세요?

“손잡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요. 제가 ‘이거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제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걸 느끼면 제게도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권력’(勸力)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권력’(權力)은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리는 힘이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권력은 ‘권유하는 힘’이에요. 누군가 ‘같이 해보지 않을래?’ 하면 그의 손을 잡아주는 힘이요.”(김민정)

“저도 비슷해요. 이번에 ‘소녀’라는 곡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SNS에 ‘코러스 좀 도와주세요, 여성분들!’라고 썼더니, 정말 많은 분들께서 흔쾌히 참여해주셨어요. 이번 음반에 참여하게 된 것 자체도 그래요. 민정님이 저에게 권유해주신 일이잖아요. 저는 음악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친한 뮤지션도 별로 없어서 동 떨어진 느낌이 있었는데, ‘소녀’를 작업하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어요.”(카코포니)

“공감의 힘이 크다고 봐요. 누구나 자신보다 크고 힘 있는 자에 의해서 억압당한 기억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트라우마가 나만의 것이 아니고, 혼자 참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제가 이해할 수 있고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만들어진 공감대가 큰 힘으로 와 닿았어요.”(김지원)

미 투 운동도 그랬다.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음으로써 그것이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 구조로 인한 문제임을 지적했다. 국내에서 미 투 운동이 활발했던 2018년, 인디 신에도 성폭력 피해 고백이 줄을 이었다. 홍대에서 ‘탈덕’한 팬들은 ‘한국 인디밴드의 공연을 안 가는 이유들’이라는 문서로 인디 신의 성폭력 사건·사고를 기록했다.

Q. 미 투 운동 이후 홍대가 뒤집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 안에서 활동하는 여성 뮤지션들은 양가감정이 들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이 들죠. 최근엔 인간관계에서 경계를 짓는 게 가장 어려워요. 가령 나는 저 사람의 밑바닥을 아는데, 제가 이런 음반을 작업한다고 하니 좋을 일한다며 비행기를 막 태우고…. 이젠 저한테 ‘페미니즘·인권과 관련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는 캐릭터가 생긴 것 같은데, 그래서 저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도 면죄부를 받는 사람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가능하면, 사적인 자리에서라도 ‘너 이제 그런 말 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역할은 계속하려고요.”(김민정)

“희망적으로 보자면, 잘못했던 사람들이 이 음반을 듣고 뜨끔하게 되지 않을까요?(웃음) 작년 네트워킹 파티에서 누군가 얘기하길, ‘호모소셜 안에서 발버둥치다 보니 나는 명예 남성이 돼 있었다’래요. 자기 몫을 쥐기 위해서 버거운 일 앞에서도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주문 걸고, ‘넌 다른 여자 애들이랑 다르구나’라는 말을 칭찬처럼 들으면서 살아남은 거죠. 그들을 내칠 순 없는 거잖아요.”(김지원)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어요. 구린 건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고 진실은 드러난다. 그러니 그 전에 어떤 길을 갈 것인지 계속 권유하고 싶어요.”(김민정)

Q. 인디 신에서 여성 뮤지션으로 사는 건 어떤가요?

“굳이 ‘여성 뮤지션으로’라기 보단 제 모습으로 사는 것 같아요. 대신 사회에서 필요한 목소리를 여성이라는 입장으로 내는 거죠.”(김민정)

“저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그게 어느 정도 페미니즘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면서요. 대부분 위대한 예술가라고 하면 남성 예술가의 이름을 먼저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내가 그에 버금가는 작품을 만들면, 사람들도 ‘엄청난 여성 예술가가 나올 수 있구나’라고 인식하고, ‘여성도 할 수 있구나’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요.”(카코포니)

“예전엔 ‘여성 뮤지션’ ‘센 언니’ 같은 표현을 먼저 가져다 붙이는 게 싫었어요. 그런데 여성 뮤지션에겐 무대에 설 기회가 (남성 뮤지션과는) 다른 비율로 찾아온다는 걸 느끼면서, 분명 얘기해야 할 건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여성 뮤지션’이라는 단어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 것 같아요. 아까 미 투 얘기를 했었죠. 미 투 운동이 큰 힘을 발휘하길 바랐는데…잘 안 됐죠. 주로 여성 관객과 남성 뮤지션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 폭로됐지만, 이 안에는 훨씬 많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어요. 남성 기획자·제작자가 신인 여성 뮤지션을 상대로 한다든지…. 흔했어요. 같은 뮤지션들끼리도 예쁜 외모에 나이가 많지 않은 여성 뮤지션을 뒤풀이에서 안주로 삼는 분위기도 흔했고요. 여성 관객뿐 아니라 여성 뮤지션에게도 (인디 신이)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었던 거죠. 그래서 ‘여성 뮤지션’이라는 단어를 쓰게 됐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불합리한 현실을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김지원)

“얘기를 듣다보니 저도 생각난 게 있어요. 에고펑션에러에 제가 처음 들어갈 때, 저한테 요구하는 게 ‘귀여움’이었어요. 지금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극복해가는 상황이고요. 여성 록 뮤지션들이 하나의 그림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활동들을 해나가고 싶습니다.”(김민정)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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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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