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점 신선 코너에서 만난 60대 주부는 “직장과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이 재택근무와 휴교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평소보다 먹거리에 조금 더 손이 갔다”며 “과자류나 유제품, 빠르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 등의 소비가 늘었다”면서 카트 속 가공 훈제오리 제품을 가리켰다. 그는 “하루 먹을 것이 삼일치 정도로 늘어난 정도”라고 설명했다.
최근 대형마트는 식료품 위주로 매출이 증가했다. 지난 19일부터 20일까지 롯데마트의 주말 매출은 의무휴업일이 없었던 2주 전 주말(5~6일)보다 13.8% 올랐다. 라면 22.4%, 두루마리 휴지 18.9%, 생수 15.4%, 즉석밥을 비롯한 상온밥죽 28.5% 등 생필품 매출이 평소 주말보다 많이 늘었다. 같은 기간 이마트에서도 과일 20.1%, 채소 15.9%, 육류 13.2%, 수산물 14.3%, 가공식품 25% 등 식품 매출이 신장했다.
다만 사재기에 비견될 만큼, 높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이 대형마트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먹거리는 평소 할인에 따라서도 매출 변동이 크게 나타나는 품목이다. 보통 대형마트 한우 세일 역시 육류 매출이 30%까지 오르기도 한다. 통상 사재기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판매가 늘어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미국 등 해외에선 300% 이상 매출이 치솟기도 한다. 이에 20~30%의 낮은 증가율에 사재기라는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다수의 소비자들 역시 사재기란 말에 동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물건이 동나 구매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유통업계는 위기 속에도 사재기가 없는 한국에 대해 촘촘한 유통망을 그 근거로 든다. 미국과 호주 등 해외에는 지역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물건 살 곳이 마땅치 않은 반면, 한국은 주거지 근처에 시장, 편의점, 슈퍼, 마트 등이 즐비하다. 분명 해외와 다른 한국의 특수성으로 꼽힌다.
서울에서 자취 중인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원룸이라 물건을 사재기해 쌓아둘 공간도 없다”라며 “평소에도 냉장고가 텅 비어있다고 할 만큼, 식재료나 음식물을 쌓아두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식료품만 구입하고 먹고 치우기 때문”이라며 “집 앞 편의점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사재기를 할 이유가 없다”라고 평가했다.
고도로 발달한 한국의 배송 서비스도 사재기를 없앤 주 요인이다. 이미 쿠팡, 마켓컬리를 필두로 주요 이커머스들은 배송 속도전을 벌이고 있고, 이 전장은 새벽까지 확대한 상태다. 이제는 오프라인 중심의 대형마트와 백화점까지 ‘당일배송’에 뛰어들어야 할 만큼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이제는 온라인 유통이 생필품을 넘어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신선식품·패션·뷰티 제품의 판매까지 엿보고 있다.
성숙해진 시민 의식도 사재기를 없앤 공신으로 평가된다. ‘필요한 만큼만, 소용량으로 다양하게’ 구입하는 것이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굳어지고 있다. 이마트 용산점에서 만난 김세환(50)씨는 “지난 마스크 대란 때도 봤듯이 결국 사재기가 모두의 피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는가”면서 “확진자가 천명이 넘어도 사재기 걱정 없는 나라라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사재기를 조장하는 일부 사람들과 언론이 문제”라고 질타했다.
대형마트 업계도 아직까지 사재기 조짐은 없다고 단언한다. 생필품 수요가 다소 늘어난 것은 맞지만, 제조사와 유통사가 이를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현재 온‧오프라인 유통사들은 식료품과 생필품 할인전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확산을 거치며 국내 물류와 유통체계가 더 견고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A 대형마트 관계자는 “이미 국민들이 앞선 코로나19 확산에서 국내 물류와 유통체계가 탄탄한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재기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라고 내다봤다. B 대형마트 관계자 역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이후 마트에 대한 대량의 사재기는 사라졌다고 봐도 좋다"면서 ”그만큼 성숙된 소비문화가 자리 잡은 측면도 있다“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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