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 와 명품

[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 와 명품

정동운(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기사승인 2021-01-06 23:40:16
▲정동운 전 대전과기대 교수
현대의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활동이다. 최근에는 소비가 단순히 기본적 생활유지를 위한 경제행위를 넘어 타인의 소비행위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현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즉, 명품(고급품)소비를 통하여 자신의 ‘뛰어남’과 ‘차별성’을 나타냄으로써, 타인의 ‘모방성’을 유발하게 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패션계를 주도하는 세계적 패션잡지의 악마 같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비서가 된 앤드리아(앤 해서웨이)가 현란한 명품의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이야기로, ‘명품소비 세대의 바이블’이라는 평가를 받은 영화이다. 

한국인들은 ‘명품’하면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구찌, 프라다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를 떠올린다. 유독 한국에서만 ‘명품=고급브랜드(고가품)’를 칭하는 용어로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명품의 진정한 의미가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자로 명품(名品)은 명(名; 이름 명․이름 날 명)자는 석(夕; 저녁 석)자 아래에 구(口; 입 구)자를 받쳐 만든 것으로, ‘저녁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이름을 불러서 알아냈다’는 뜻과, ‘사람의 이름’을 뜻한다. 그리고 품(品; 물건 품․평할 품)자는 입 구(口)가 셋으로 구성된 글자로, ‘여러 사람’, ‘품계’(등급), ‘품평’을 뜻한다.

또는 물건(口)을 쌓아 놓은 모양(品)에서, ‘물건’, ‘종류’의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명품(名品)은 ‘어둠 속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뛰어난 물건’이란 뜻이다. 또한, 영문 표기인 ‘Luxury Goods’에서 luxury는 ‘사치’․‘호화’, ‘고급품’을 의미하며, goods는 ‘물건’․‘물품’․‘상품’, ‘재화’․‘재산’을 뜻하므로, ‘뛰어난 상품’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명품은 ‘장인 정신에 의해 탄생한 진귀한 물건’으로, 특별한 가치와 기품을 지닌 제품이다.

현실적으로 악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프라다와 같은 명품을 입는다. 진품의 가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모조품이라도 입을 만큼 명품소비에 대한 열망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따라서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 준다’는 표현은, ‘패션이 권력이다’라는 반증이다. 이는 소비행위야 말로 소비자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소비사회의 정점에 있는 패션산업계를 조명함으로써 현대의 소비사회의 특성을 잘 보여주었다.


문제는 명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가의 명품 소비가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이 된다는데 있다. 특히, 불황기에도 명품소비가 감소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소비패턴을 ‘카타르시스(cathartic) 쇼핑’이라 한다. 즉, “남들과 나 자신에게 내 운명과 내 선택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확신에 찬(assertive) 소비’”(사이먼 무어 이노베이션버블 CEO)라 한다.(윤희훈, “코로나 경제 위기라는데 멈추지 않는 명품 판매”, 조선일보, 2020. 6.14.)

한국 소비자들은 명품 구매도 유행에 민감해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남들이 사면 따라 사는 성향이 강하다. 한국 명품시장규모는 2019년 기준 약 31조원 규모로 전 세계에서 8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명품시장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호갱(호구+고객)’ 논란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가격을 올리든 인기 많은 명품에 대한 선호도와 인기는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이윤재․심상대, “코로나 와중에 가격인상 또 인상…명품 앞에 한국은 항상 ‘乙’”, 매일경제, 2020. 7.21. A10면)

명품소비는 개인이 사유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명품을 소비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명품을 구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신용불량자 양산 등의 부작용이 많이 벌어지는데 있다.

원 베네딕트는 '명품인생이 되라'에서 “명품과 같은 인생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산다. 더 나은 삶을 산다. 특별한 삶을 산다. 명품을 부러워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 내 삶이 명품이 되게 하라.”고 하였다. 영화에서 미란다의 수석비서 자리 - 수많은 여성들이 꿈꾸는 직업 - 를 눈앞에 두고, 앤드리아는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했던 초심을 잃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는 첫 발걸음이며, 명품만 걸친 빈껍데기가 아니라 스스로 명품인재가 되는 길을 보여준 것이다. “제품의 빈곤은 치유할 수 있지만 영혼의 빈곤은 치유하기 어렵다”는 사회학자들의 견해를 들지 않더라도 그녀의 선택은 내면을 살찌우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다.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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