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해체한 그룹 구구단의 마지막 완전체 음반은 2018년 11월6일에 나왔다. 그룹 아이오아이 활동으로 이름을 알린 김세정과 강미나를 제외하면 멤버 절반 가까이가 별다른 개인 활동 없이 2년여의 공백을 가졌다. 2019년 해체한 그룹 프리스틴 역시 마지막 음반 발매 이후 600일 넘는 시간을 완전체 활동 없이 보내야 했다. 구구단과 프리스틴의 해체에 팬들이 분노한 건, 단순히 좋아하는 그룹이 사라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실력과 매력을 충분히 갖춘 가수가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소속사의 지원 없이 방치됐다고 느낀 팬들이 많았다. 이들 외에도 제대로 된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 채 계약에 묶여 있는 사례도 얼마든지 많다. 가수가 성공하는 데는 당연히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팀의 실력과 매력은 물론이고, 기획사의 제작 능력과 심지어 약간의 운이 필요할 때도 있다. 소속 가수를 장기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기획사의 끈기와 물적 기반이 중요한 건 그래서다. 부디 새해에는 ‘한방’보다 ‘꾸준’을 지향하는 기획사가 많아지길. ‘꿈’의 무게를 알고 있다면 말이다.
JTBC는 올해 상반기 방송하는 ‘슈퍼밴드’ 시즌2 참가자를 모집하면서 여성 뮤지션의 참여는 제한해 입길에 올랐다. 장르, 나이, 국적, 학벌은 상관없지만 여성은 안 된다는 지원 요건에 시청자들은 ‘성차별적인 조건’이라며 반발했다. JTBC의 장수 음악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JTBC ‘팬텀싱어’는 3개 시즌으로 이어지는 내내 남성 보컬리스트에게만 기회를 줬다. 연출을 맡은 김형중 PD는 시즌1 제작발표회에서 “중창은 남성의 이미지가 좀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렇기에 여성 4중창이 더욱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뮤지컬 앙상블 배우들에게 주연할 기회를 주는 tvN 오디션 프로그램 ‘더블 캐스팅’에도 남성들만 출연했다. 여성은 음악을 못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여성은 뜨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일까. 밴드 빌리카터 멤버 김지원의 말처럼 “음악성이든 스타성이든 성별로 구분 짓는 것부터 틀렸”는데, 방송사는 자꾸만 여성 뮤지션을 배제한다. 아~ 머리 좋아 PD 아니더냐. ‘슈퍼밴드2’의 지원 요건 변경을 시작으로 새해엔 마라, 마라, 차별하덜 말아라.
“혼자 널 생각하며 소주 한 잔해” “그리워서 한 잔. 생각나서 한 잔” “몇 잔이면 잊혀질까” “술이 깨면 내가 또 미워질까 봐 마시다 보니 조금 취했어”…. 마치 연결된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 구절들은 놀랍게도 서로 다른 4곡에서 따온 가사다. 10대와 20대 남성들이 어떤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밝혀진 바 없으나, 어찌됐든 이별의 슬픔에 술잔을 기울이다 취기를 빌려 결국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걸고야 마는 남자의 절절한 노래에 젊은 남성들은 가슴 깊이 공감했다. 숨이 넘어갈 듯한 고음, 애달픔과 지질함을 오가는 가사,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현악기, 여기에 ‘일반인의 소름끼치는 라이브’ 같은 커버 영상이 지원사격 해준다면, 음원차트 1위는 따 놓은 당상이다. 단, 이런 ‘술 발라드’의 인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위의 가사로 언급한 노래 중 다수는 이미 음원 차트 순위 조작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누군가는 ‘흥행 공식’이라고 여겼을 ‘술 발라드’의 문법이 어쩌면 벌써 밑천을 드러냈는지도 모른다.
wild37@kukinews.com / 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제공, JTBC ‘슈퍼밴드’ 시즌1·황인욱 ‘포장마차’ 뮤직비디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