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최근 사용이 늘고 있는 흑채, 치아교정기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중 화상, 기기 고장 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제는 의료기관 관리자인 의료인에게 안전관리 책임소재가 없어 안전사고 발생시 의료기사 등의 종사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종사자에게 과도한 책임이 부여되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 안전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이에 국회에서는 MRI를 포함한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책임자를 명문화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 금속성 물질로 인한 화상 발생, 침대‧휠체어 날아가며 환자 피해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방사선기사들에 따르면, 흑채와 치아교정기 사용으로도 MRI 관련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A 기사장은 “흑채 안에 금속성 물질이 있으면 장비가 고장 날 수 있고 심하면 머리 부분에 화상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아교정기를 하고 있는 경우라면 영상 품질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촬영이 불가하다. B 방사선사는 “금속 치아교정장치를 하고 있다면 뇌 MRI 촬영은 불가하다. 환자 안전이나 기기상에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이미지(촬영) 출력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일시적으로 교정장치를 제거하거나 질환에 따라 CT 촬영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 기사장도 “요즘에는 MRI 촬영이 가능한 교정장치가 나오고 있는데 그런 게 아니라면 머리 쪽 촬영은 어렵다. 유지장치도 마찬가지”라면서 “검사는 할 수 있겠지만 이미지가 선명하게 안 나온다”고 부연했다.
최근에는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안면화상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MRI 촬영 시 금속 부품이 사용되지 않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안전성 서한을 배포하기도 했다. 앞서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은 환자가 금속재료가 사용된 마스크를 착용하고 MRI 검사를 받다가 안면화상 피해를 입는 사건을 보고 받고 이같이 권고한 바 있다.
금속성 물질이 기기에 붙을 경우 환자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A 기사장은 “MRI는 자기장이 강할수록 영상이 더 선명하게 촬영되지만 위험성은 증가한다. 볼펜도 안에 용수철이 있어서 3~4m 거리에 있어도 나도 모르는 새 휙 날라 간다”며 “그래서 MRI 검사실에 들어가기 전 컨트롤 룸을 통과해 갈 수 있도록 하고, 환자 내‧외부에 위험 물질이 있는지 여러 차례 확인해야 한다. 개인병원 같은 곳에서는 한눈 판 사이 휠체어, 침대 등이 날아가면서 기기가 고장 나고 환자가 같이 다치는 일이 많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심장 박동을 유지하기 위한 ‘페이스메이커’가 삽입된 경우라면 기기가 심장을 뚫고 나온다.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못 걸러내면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며 “그래서 사전에 이중삼중으로 확인해야 하는데 그 업무는 거의 방사선사가 하고 있다. 병동에서 환자를 보낼 때 의사나 간호사가 이런 것들을 확인했는지 알 수 없고, 그대로 통과시켰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방사선사)가 거르지 못한 거라 책임을 모두 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병동에서 1차적으로 걸러지지 않는 환자들이 조금 있다. 병동에서도 바쁘다보니 신경 쓰지 않는 것”이라며 “MRI 검사실에 들어가는 순간 사고가 많이 나고 환자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사들이 전반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의료인 아닌 종사자들도 ‘안전관리책임자’ 지정
현행법령에 따르면,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관리·운용자격이 명시되지 않고 보건복지부령으로 위임하고 있으며, 개설자(관리자)가 아닌 안전관리책임자가 안전관리의 책임을 모두 지고 있는 상황이다. 안전관리책임자는 근무 중인 의사, 치과의사, 치위생사뿐만 아니라 방사선사, 이공계 석사학위 소지자등 여러 종사자도 될 수 있다. 이에 서영석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치를 설치한 의료기관 개설자의 관리와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지난해 말 대표발의했다.
서 의원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에 의한 안전관리의 중요성을 볼 때 안전관리 책임자를 명확하게 해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안전관리책임자가 관리하는 범위는 안전관리업무 계획 평가부터 시설관리, 환자 안전과 종사자의 방사선 피폭 관리까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운용에 관한 안전관리 전반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다. 환자 안전과 종사자 모두의 문제를 관리하는 것이며 이는 기관의 개설자(관리자)의 책임관리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기관 개설자나 관리자가 의료인인 경우 책임자로서 직접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안전관리책임자를 선임하도록 하면서 개설자가 아닌 안전관리책임자에게 안전관리의 책임을 모두 전가시킨 측면이 있다”며 “장치 유지 운용에서의 안전관리는 단순하지 않아, 개설자가 안전관리책임자에게만 업무를 맡기고 업무수행 여부만 확인하는 정도로는 안전관리가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문제는 개설자, 관리자들이 안전관리책임자가 직무수행을 소홀히 할 경우 직을 해임하거나 교체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일부 의료기관은 개설자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안전관리책임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다수 의료기관은 안전관리책임자가 개설자(관리자)와 상관없이 별도로 선임 운영되고 있다. 방사선의 유해성이 심각한 만큼 안전관리는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영조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의료법상 안전관리책임자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치과의사, 방사선사, 실무경력이 3년 이상인 치과위생사 등이 될 수 있으나 현재까지 신고된 책임자는 의사가 더 많다”면서 “또 의사라고 해서 기기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자를 선정하고 있다. 오히려 방사선사 같이 기기를 잘 아는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따르면 현재 선임된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책임자는 총 3만5456명으로, 이 중 치과의사가 46.2%(1만6390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의사 34.1%(1만2102명), 방사선사 16.0%(5671명), 미표기 3.6%(지자체 제출 자료 중 직종 미표기 인원 1293명) 순이다.
송 과장은 “법률 개정을 통해 장치 안전관리와 책임자 교육 등에 대한 법률 근거를 마련하고 품질 관리를 강화했다”면서도 “물론 현장에서 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기관 개설자가 전체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또 국회에서 관련 내용이 발의된 만큼 검토해 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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