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을 내려놓은 윤 총장의 향후 행보가 결국 정계 입성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넉 달여 앞둔 시점이다.
윤 총장은 사퇴 입장문을 통해 “저는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한다”며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총장은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면서 “그동안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분들, 그리고 제게 날 선 비판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끝맺었다.
이날 윤 총장 사퇴 입장문 내용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이라는 문구다.
윤 총장은 전날 대구고·지검에 방문한 자리에서 정계 진출 여부를 묻는 말에 “지금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다”고 즉답을 피했다.같은날 윤 총장의 대구·고지검 방문은 정치인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 지지자와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윤 총장이 도착하기 전부터 응원하는 화환 20여개와 현수막이 설치됐다. 시민들은 ‘윤석열’을 연달아 외쳤다. 한 지지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들었다. 윤 총장을 마중나온 국민의힘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은 꽃다발을 건네며 “헌법 가치를 수호하는 총장님의 행보를 응원한다”고 덕담했다.
윤 총장의 바뀐 화법도 정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3일 윤 총장은 여당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겨냥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한다)”이라고 발언해 주목을 받았다. 정치인들이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신조어와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1일 국민일보와의 취임 이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는 “중수청은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라며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라고 작심발언을 했다. “국민들께서 관심을 가져달라”며 여론전을 주도했다.
중수청 강경발언 이후 윤 총장의 지지율은 소폭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3일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3월 1주차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가장 적합한가’라는 질문에 윤 총장은 전주 대비 2%p 반등한 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난 1월 이후 줄곧 하락을 기록하다가 5주만에 반등했다. 여론조사의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윤 총장의 지지율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이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 1월 이재명 경기도 지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차기 대선주자 1위를 차지했다. 같은달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1~2일까지 양일간 실시한 여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결과 윤 총장이 30.4%의 지지율로 1위에 올랐다. 같은 조사에서 이 지사는 20.3%, 이 대표는 15%로 집계됐다. 해당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5.2%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윤 총장의 사퇴 표명은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항명 파문의 연장 선상”이라며 “‘조국 사태’ 이후 추윤 갈등과 검경 개혁 과정에서 윤 총장은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치 행보를 밟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여당이 너무 과도하게 검찰을 밀어붙이면서 오히려 윤 총장에게 사퇴의 명분을 준 셈이 됐다. 윤 총장으로서는 더 총장직을 유지하는 게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타이밍, 명분, 상황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최 연구원장은 “사표를 내는 행위 자체가 정치다.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나온 표현을 보면 정치권에서 쓸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단어만 썼다. 배틀필드(전장), 헌법, 졸속추진 등 단어를 봤을 때 작심하고 준비를 많이 한 것”이라며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마 4월 보선이 끝나면 정치권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며 “윤 총장은 이미 무형의 정치활동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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