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두릅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두릅

박용준 (묵림한의원 원장, 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

기사승인 2021-03-19 17:44:51
박용준 원장.
춘분(春分)은 경칩과 청명 사이에 있는 봄의 절기로 양력 3월 20일 즈음이다. '봄을 나눈다'라는 뜻을 지닌 춘분은 흔히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서 음양이 반씩 조화를 이루는 시기이기에 더위와 추위가 같다고도 한다.

​더위와 추위가 같은 춘분은 너무 덥지도 않고 너무 춥지도 않아 농사일을 하기 좋은 때다. 농가에서는 춘분을 전후로 밭을 가는 등 농사 준비로 분주한 날을 보내게 된다. 춘분은 기온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하여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논두렁이나 제방이 약해져 이곳들을 손보고 고치는 시기다. 봄의 들판에 피어나는 각종 나물을 캐는 시기이기도 하다. 

​춘분 즈음에는 이렇게 봄의 생명력과 기운을 담은 봄나물을 캐다가 먹기도 하고, 약용으로 사용할 부위들은 다듬어 말려두기도 한다. 봄나물은 겨우내 부족한 영양분들로 인한 춘곤증을 다스리는데 제격이다. 이맘때 구하기 쉽고, 먹기 좋은 맛있는 봄나물로는 냉이, 쑥, 달래, 두릅 등이 있다.

먹을 것이 없는 상태를 ‘기근’이 들었다고 표현하는데, 기(饑)는 ‘곡식이 여물지 않아서 생기는 굶주림’을, 근(饉)은 ‘채소가 자라지 않아서 생기는 굶주림’을 일컫는다. 우리 선조들은 오곡의 곡물 못지않게, 채소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며 겨우내 부족한 영양분들을 봄나물들로 보충하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 

山上木頭菜 (산상목두채)
海中石首魚 (해중석수어)
桃花紅雨節 (도화홍우절)
飽喫臥看書 (포끽와간서)

-退溪 李滉(1501~1570)-

'산에서 나는 나물 중에 으뜸은 목두채요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 중에 으뜸은 석수어다.
복사꽃 붉게 비오 듯 날리는 이 봄에
배불리 먹고 누워서 책을 읽노라.' 

퇴계 이황의 이 싯구에서 말하는 목두채(木頭菜)는 두릅을 가르킨다. ‘목두채’라는 명칭은 ‘나무 머리 위의 채소’라는 의미로, 나뭇가지 끝에서 새순이 자라나는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봄에 산과 들에 잘 자라나는 봄나물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나물이 퇴계 이황 선생의 시에 나오는 ‘두릅’이다. 

참두릅(왼쪽)과 땅두릅.

한의학에서는 두릅을 목두채(木頭菜) 외에 ‘가시가 많은 나무라서 새가 앉을 수 없다’는 뜻으로 조불숙(鳥不宿), ‘용의 어금니를 닮았다’하여 자룡아(刺龍牙), ‘늙은 호랑이가 이 나무에 다가와서 그 가시에 몸을 비벼 긁는다’하여 노호자(老虎刺) 등으로 부른다. 

보통 봄에 올라오는 새순에는 독이 없어서 웬만한 봄풀은 먹어도 된다고들 한다. 단단한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두릅나무의 가지 맨 끝에서 새순이 올라오며 연둣빛의 부드러운 새순이 펼쳐지기 직전, 자연산 두릅은 두릅나무의 잎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전의 이런 상태의 새순을 의미한다. 

두릅나무 새순은 옛날부터 춘궁기나 흉년 등에 구황식물로 활용했지만, 최근에는 봄철 건강 별식으로 각광 받고 있다. 두릅은 또한 그 독특한 향이 일품이다, 두릅나무에서 따는 자연산 두릅을 참두릅이라 하고, 음나무(엄나무)의 새순을 개두릅이라 부른다. 참두릅이나 개두릅처럼 나무가 아닌 풀이지만 이 역시 나무처럼 크게 자라는 땅두릅도 대표적인 봄철 먹거리인 두릅의 하나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두릅은 성질이 미지근하고 독이 없다. 약으로 쓰기 위해서는 봄철에 채취하여 가시는 제거하고 햇볕에 말려 사용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열매와 뿌리는 오래된 기침, 당뇨, 소화불량을 다스리는데 사용한다.

나무두릅인 참두릅은 채취하는 시기는 초봄에 한정되어 있고, 수확량도 적으며 나무에 가시가 나 있어서 채취가 어렵다. 최근에는 가지를 잘라다가 하우스에서 식재, 온상 재배하는 방법으로 수확하는 재배두릅을 마트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재배가 되지 않아 시중에서 흔히 보기 힘든 음나무의 순은 향이 강하고 약효도 좋아 최근 들어 더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강원도 지역에 가면 높이 20미터쯤의 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땅두릅은 풀이면서도 센 바람에도 움직이지 않으며 홀로 잘 자란다 하여 독활(獨活)이라고 불린다. 참두릅과 개두릅은 맛과 모양이 비슷한 데 비해, 땅두릅은 참두릅에 비해 줄기 부분에 약간 보라빛을 띄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맛도 땅두릅은 참두릅과 달리 속에 미끈한 점액을 가지고 있기에 식감에서도 약간 차이가 난다. 

‘산에서 나는 나물 중 으뜸은 두릅이요(山上木頭菜)’라는 퇴계 이황의 싯구처럼, 봄에 맛볼 수 있는 두릅을 민간에서는 ‘산채의 제왕’이라 칭한다. 묘한 향과 쌉쓰름하면서 깔끔한 맛은 물론이고 각종 영양분까지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쓴맛이 나는 약초들은 지친 위장의 기능을 도와주고 식욕을 좋게 한다고 한다. 두릅 특유의 쌉쓰름한 향과 특유의 식감은 겨우내 지친 몸을 다스려 식욕을 돋워 주는 특효약 중 하나이다. 쌉쓰름한 맛과 약간의 신맛은 인삼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사포닌과 비슷한 성분이다. 

두릅의 이런 성분들은 필요 이상의 혈당과 혈중 지질을 정상적으로 유지해줘 당뇨 환자에게 좋다. 또한, 나쁜 콜레스테롤을 배출하는 능력으로 인해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증 같은 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좋다. 

각종 비타민은 물론이고 양질의 단백질과 아울러 인, 칼슘, 철분 등의 미량원소들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 섬유질 함량은 풍부하고, 칼로리가 낮아 변비 예방과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이쯤 되면 두릅을 봄날의 춘곤증을 다스리는 ‘산채의 제왕’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듯 싶다. 더위와 추위가 조화를 이루는 시기인 춘분 즈음에 두릅으로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식단을 꾸며보면 어떨까?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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