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등은 이렇게 만들어졌다···삼성 83년史

세계 일등은 이렇게 만들어졌다···삼성 83년史

'이병철-이건희-이재용' 이어지는 '도전'과 '혁신'
3세 총수 구속에 수술까지···우울한 창립 83주년

기사승인 2021-03-23 06:00:08
[쿠키뉴스] 윤은식 기자 ="경영은 변화에 적응해가야 살아남는다. 그래서 경영자는 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경영자는 그만큼 힘든 직책이다."<이병철 선대 회장, 1978년 12월 19일. 정례사장단회의에서>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에게 경영은 '모험'이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업적이 거론될 때마다 항상 '도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의 도전 정신은 22일로 창립 83주년을 맞은 삼성이 한 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거둔 TV·냉장고·스마트폰·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IT·가전분야 전 세계 1위라는 성적표를 거두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삼성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사진제공=호암재단)
이병철 회장의 첫 사업은 19936년 정미소와 운수업이었다. 결과는 '대박'. 다음으로 눈을 돌린 땅 투자로 '초대박'을 터트린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이듬해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고 한순간 사업은 바작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쓰러지지 않았다. 실패에 낙심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모색. 1938년 3월 1일 대구 서문시장 인근에 '삼성상회' 간판을 내걸었다. '삼성'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

삼성의 창립기념일은 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가 세워진 3월 1일이었지만 1987년 3월 22일 이건희 회장이 총수에 오른 뒤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면서 삼성은 이날을 창립기념일로 삼고 있다.

"생필품을 수입에만 의존해서는 국가 경제 자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1953년 11월 한국전쟁 이후 생필품을 전량 수입에 의존할 당시 이병철 회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생필품 공장을 세운다. CJ그룹의 모태가 된 '제일제당'이다. 이때 만들어진 제품이 그 유명한 백설이다. 그래서 CJ는 국내 최초로 '설탕'을 생산한 이날을 창립기념일로 하고 있다.

호암재단이 1998년 출판한 기업은 사람이다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을 설립하려고 하자 주변에서는 값싼 원조물자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판국에 막대한 자금을 들여 공장을 세운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은 미국마저 원조를 거부한 모직 사업에 뛰어든다. 모직 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드는 데다 당시 한국의 기술력으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모직 사업에 뛰어든 1년 6개월 만에 마카오 복지가 휩쓸던 국내 시장을 제일모직으로 뒤엎는다. 

1987년 8월, 3라인 착공식에서 이병철 선대회장(오른쪽 첫 번째)과 이건희 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공장 조감도를 보고 있다.(사진제공=삼성전자)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합니다."

이병철 회장은 1960년대 전자사업에 뛰어든다. 소비재 산업으로 더는 고부가가치를 누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1980년 초 만해도 반도체 사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반도체는 삼성의 미운 오리 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병철 회장은 1983년 이른바 '도쿄 선언'으로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다. 그의 나이 73세 때의 결단이다. 그는 "위험을 뛰어넘어 성공을 쟁취해야만 삼성의 내일이 열린다"며 삼성의 반도체 사업 성공을 확신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 1984년 64K D램 성공이다. 이 성공으로 미국과 일본에 격차가 났던 반도체 기술력을 4년이나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이병철 회장이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초석을 닦았다면 이들인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내가 질(質) 경영을 그렇게 강조했는데 이게 그 결과입니까. 나는 지금껏 속아왔습니다. 사장과 임원들 전부 프랑크푸르트로 모이세요. 이제부터는 제가 직접 나설 겁니다."<이건희 회장 1996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회장은 제품이 불량 상태임에도 대충 조립하는 직원의 모습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로 상징되는 삼성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 이때 나왔다. 초일류 삼성전자를 있게 한 분수령으로 꼽힌다.

이건희 회장의 고강도 혁신으로 탄생한 것이 국민 휴대폰 애니콜이다. 애니콜의 성공은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세계 1위를 지킬 수 있게 한 원천이 됐다. 삼성 스마트폰은 미국의 애플과 중국 화웨이에 1위자를 위협받고는 있지만 2011년 이후 10년째 시장 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TV시장에서도 삼성은 2006년 '보르도 TV'를 앞세워 당시 가전 제품의 왕좌 소니를 제치고 15년 연속 세계 1등을 수성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해외 현지 생산공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제공=삼성전자)
"메모리에 이어 파운드리 포함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1등 하도록 하겠습니다. 굳은 의지와 열정, 그리고 끈기를 갖고 해내겠습니다. 성공을 위해 사람과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겠습니다.<이재용 부회장 2019년 4월 시스템반도체 선포식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2019년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총 133억원 투자로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반도체)를 1위로 만들겠다는 뉴 삼성을 발표했다. 비메모리로 할아버지인 이병철과 아버지 이건희의 신화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투자 계획을 발표한지 2년 만에 국내 투자 목표치(130조원대)보다 7조원 초과 달성했고, 채용도 연내 4만 명 채용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이병철-이건희를 잇는 삼성 신화를 창조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두 평 남짓 독방에 갇혀 버렸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등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총수 부재는 삼성의 초격차 전략에 치명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삼성은 올해도 예년과 같이 별도 대외 행사를 하지 않았다. 지난 2017년 2월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그룹 차원의 창립 기념행사를 생략해 왔다. 올해는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 중인데다 지난 19일 이 부회장이 충수염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는 등 우울한 창립 83주년을 맞았다.

eunsik80@kukinews.com
윤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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