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구현화 기자 = 얼마 전 삼성전자 갤럭시S21을 쓰면서 겪은 일입니다. 화면을 켜자 당연히 '삼성 갤럭시S21'이 뜰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정확하게 영어로 '삼성 갤럭시'까지만 떴습니다. 아니 왜 모델명이 없지? 불량인가?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성전자가 부팅화면에 모델명을 없앤 겁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에 숫자를 없앤 건 갤럭시 모델마다의 특성보다는 '갤럭시 생태계' 그 자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짜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삼성은 대중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내놓은 갤럭시S21 모델은 플래그십인 데 비해 가격을 100만원 이하로 낮췄죠. 플라스틱 바디에 램 성능도 그렇게 높지 않은 '가성비' 모델입니다. 울트라의 스펙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갤럭시S21 시리즈 내에서도 편차가 큰 건 보편 모델을 더 대중적으로 가고 하이엔드 급을 더 하이엔드로 가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이네요.
최근의 갤럭시A언팩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갤럭시 A언팩이라니? 갤럭시S가 아니고? 그렇습니다. 갤럭시A언팩은 삼성전자의 첫 A시리즈 언팩입니다. 이번 언팩에서 처음 베일을 벗은 A72를 비롯해 A52·A52 5G 등 세 개 모델을 한번에 선보였습니다. 중장년폰이나 효도폰 이미지였던 A시리즈의 이미지 쇄신입니다. A시리즈도 언팩할 정도로 하나의 제대로 된 모델로서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것이죠.
실제로 이번 A시리즈는 스펙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광학식 손떨림 방지 기능과 IP67등급의 방수방진을 지원합니다. 6700만화소 카메라에 90~120Hz 주사율과 30배 줌까지 지원하죠. 외형도 디자인상으로 세련되고 매우 젊어 보입니다. 대중성을 제대로 노렸습니다. A시리즈가 자칫 S시리즈와 비슷해지며 그 아성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는데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경쟁사를 잠시 소환해 보겠습니다. 이번에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12는 성능이나 디자인 면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전작보다도 더 잘 나가고 있습니다. 애플은 최근 아이폰12 플래그십 시리즈에서 가격을 낮추고 작고 가벼워 편의성을 더한 아이폰 미니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대중성을 고려한 것이죠.
그뿐만 아닙니다. 코로나 시국에 가격을 낮춘 이른바 '코로나 에디션'인 아이폰SE(스페셜 에디션)도 인기몰이 중입니다. SE는 누가 사느냐고요? 2030세대가 삽니다. 젊은 이미지에 가성비를 원하는 고객을 공략한 셈이지요.
애플의 돌풍은 무섭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작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19%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지만, 4분기 기준으로는 애플에 점유율 1위를 뺏긴 바 있습니다. 점유율이 20%를 넘지 못한 것도 10년만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번엔 아시아로 눈을 돌려 볼까요. 삼성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업체인 화웨이가 5G 장비를 팔다가 미국과 유럽의 반중국 공세에 고전하면서 스마트폰 실적도 미끄러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로서는 화웨이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중국업체가 화웨이만 있는 건 아니죠? 샤오미나 오포 등은 저렴한 가격으로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로서는 중저가폰에 대한 점유율을 중국업체에 뺏기지 않아야 하는 당위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삼성전자는 프리미엄에서는 애플과 싸우고,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에 쫓기는 상황이죠.
애초에 삼성전자는 S시리즈도 S시리즈지만, A시리즈가 가장 잘 나갔죠. 지난해 글로벌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 A51 모델이고, S보다도 A시리즈 판매량이 더 많았습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에는 전략적으로 S시리즈만 강조해 왔죠. 애플에 대항해 기술력을 갖췄다는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최근 애플의 상승세와 중국업체의 공격 등으로 중저가의 아성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삼성전자는 갤럭시S21 출시를 통상 2월에서 1월로 앞당기고, 갤럭시A시리즈 언팩도 처음으로 선보였죠. 글로벌 시장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삼성전자도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내 아이폰SE의 출격이 한차례 더 기대되는 가운데 갤럭시A 시리즈도 A82 등이 연달아 출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스마트폰 시장의 접전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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