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기자 / 만만치 않은 세상, 마음을 어루만지고 정신을 다듬어 보는 시간 마인드온 시작합니다.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 박소진 대표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소진 대표 / 안녕하세요. 박소진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첫 번째 영화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입니다. 1998년에 개봉한 영화니까 벌써 개봉 20주년이 훌쩍 넘었네요. 이 영화로 남자 주인공인 잭 니콜슨은 오스카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오늘 얘기를 나눌 주제와 관련된 캐릭터를 정말 완벽하게 소화해 냈습니다.
김성일 기자 / 잭 니콜슨이 굉장히 괴팍한 성격의 작가 역할을 맡아 연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박증이 있었죠?
박소진 대표 / 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강박장애를 잘 묘사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박장애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강박사고가 있으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생각, 충동, 이미지 등이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떠오릅니다. 이런 사고를 ‘침투적 사고’라고도 합니다. ‘침투’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자신 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어온다는 그런 느낌이 있죠. 그리고 강박행동은 이런 강박사고로 인한 괴로움을 덜기 위해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고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손 씻기, 정리정돈하기, 확인하기, 숫자세기 등을 예로 들 수 있고요.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은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고, 하나만 있을 수도 있습니다.
김성일 기자 / 강박장애의 발병률은 어느 정도인가요?
박소진 대표 / 100명당 약 2명가량 발생하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는 1~2% 정도에 달한다고 합니다. 발병 연령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빠른 편이고요. 서서히 발생해서 만성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습니다. 여성은 성인기 발생률이 좀 더 높습니다.
김성일 기자 / 영화 이야기 하면서 강박장애에 대해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더불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도 확인해 보겠습니다. 워낙 유명한 영화인데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내용부터 간략히 짚어볼게요.
박소진 대표 / 잭 니콜슨이 연기한 주인공 멜빈 유달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작가입니다. 평소 냉소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멜빈은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비열한 독설을 쏟아내곤 하는데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그의 강박적인 행동으로 인해 자주 가는 레스토랑에서도 쫓겨날 판이지만, 자신을 받아주는 유일한 웨이트리스인 캐롤 코넬리 덕분에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멜빈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김성일 기자 / 먼저 강박장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반복되는 행동들인데요. 영화 속 주인공도 여러 형태의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죠?
박소진 대표 /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주인공 멜빈의 강박장애 증상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현관문을 닫을 때 다섯 번까지 세며 잠그고, 불 스위치도 다섯 번 켰다 끄기를 반복해요. 세면대 앞에서는 새 비누를 꺼내 뜨거운 물로 손을 씻은 후 쓰고 난 비누를 바로 버리고요. 식당에서는 항상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개인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를 꺼내 식사를 하죠. 또 위생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강박 사고로 인해 한 번 사용한 장갑도 미련 없이 버립니다. 주변 사람들은 매사에 규칙적이고 완고한 멜빈을 꺼리게 됩니다.
김성일 기자 / 이런 멜빈의 행동이 강박장애의 대표적인 증상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박소진 대표 / 강박증은 특정적인 뭔가를 보면 불안해지는 ‘강박 사고’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강박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보편적으로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이 함께 나타나지만, 이 중 한 가지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요. 강박증은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요. 가장 흔한 유형은 오염과 청결에 관한 강박증입니다. 이 유형의 환자들은 특별한 것이 없더라도 더러운 것이 묻은 느낌이 들어 씻는 행동을 반복하죠. 심한 경우 샤워를 8시간 이상 하기도 하고요. 피부가 벗겨지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유형은 확인에 대한 강박증인데요. 문단속을 제대로 했는지, 가스나 수도를 끄고 나왔는지 등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유형이죠. 보통 사람이라면 한 번 확인하고 안심하지만, 확인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은 확인을 한 번만 하는 것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아서 불안해합니다. 또 정렬에 대한 강박증도 있는데요. 대개 물건을 대칭으로 알맞게 둬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강박증의 종류는 다양하고, 여러 유형이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어요. 증상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요.
김성일 기자 / 증상들을 듣다보니 결국 불안한 마음이 강박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지난 시간에 이야기 나눴던 불안장애와는 어떻게 다른 건가요?
박소진 대표/ 예전에는 강박장애가 불안장애에 포함이 됐었는데요.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불안이 여러 심리장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불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강박장애라고 보기는 어렵고요. 불안장애에서 나타나는 회피행동이 강박장애에서는 나타나지 않거든요. 불안이나 회피 반응보다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형태의 강박행동으로 강박장애를 더 잘 감별할 수 있습니다.
김성일 기자 / 네, 영화 이야기 이어 가겠습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삶을 살던 멜빈이 변화를 맞게 되는 계기가 있었죠?
박소진 대표 / 네, 멜빈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이웃에 사는 게이 화가와 흑인 매니저, 또 그들이 키우는 강아지마저 그를 힘들게 합니다. 멜빈은 흑인과 동성애자 그리고 강아지를 아주 싫어해요. 오만한 백인우월주의자나 남성우월주의자로 비춰지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이웃인 동성애자 사이먼에 의해 그의 이런 규칙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멜빈에게 사이먼은 자신의 강아지를 강압적으로 맡겨버리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멜빈은 정성을 들여 강아지를 돌보기 시작하고, 작은 강아지로 인해 따뜻함을 되찾아가기 시작합니다. 또 게이 친구 사이먼의 어려움을 알고 선의를 베풀며 우정을 쌓기도 해요.
김성일 기자 / 사실 알고 보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죠?
박소진 대표 / 평소 그가 내뱉는 직설적이고 매너 없는 말들은 어쩌면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멜빈이 자주 가는 식당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는 캐롤만이 인내심을 갖고 존중하며 유달을 대하는데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담아주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몸이 아픈 아들 때문에 사랑을 할 여유가 없던 그녀는 같이 다니기 부끄러울 만큼 심한 강박증을 지닌 유달의 진심을 보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집니다.
김성일 기자 / 그렇게 사람들을 멀리하고 극도의 결벽 증세를 보이던 멜빈이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게 됐군요.
박소진 대표 / 네, 데이트 신청을 한 멜빈에게 캐롤은 묻습니다. “왜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냐”고 말이죠. 멜빈은 “당신은 나를 보다 좋은 남자이고 싶게 만든다”고 답합니다.
김성일 기자 / 사랑으로 강박장애를 이겨냅니다. 강박장애를 다룬 또 다른 영화와 함께 강박장애에 대한 궁금증을 좀 더 풀어보도록 할게요.
박소진 대표 / 두 번째로 살펴볼 강박장애 관련 영화는 정재영, 한지민 주연의 <플랜맨>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1분 1초가 불안한, 강박증이 있는 남자 주인공의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김성일 기자 / 강박증이 있는 영화 속 인물 정석의 증상도 앞서 이야기 나눈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의 멜빈과 다르지 않죠?
박소진 대표 / 네, 아침 6시 기상 후 밤새 흐트러진 침구 다림질, 6시35분 샤워 및 드라이기로 욕실물기 제거, 8시 정각 옷 입기, 8시30분 출근, 8시42분 횡단보도 건너기 등 플랜맨 정석은 모든 일에 알람을 맞추고 계획대로 사는 삶을 추구합니다. 또 지나가던 사람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더럽다고 생각해 가방 속에는 청결제와 소독제를 챙겨 다니고요. 또 정리정돈이 돼있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증상을 보이는데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주인공과 비슷해 보이지만, 플랜맨의 주인공 정석은 ‘강박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성일 기자 / 강박증이다, 강박증이 아니다 또는 강박장애다, 강박장애가 아니다 이렇게 구분하는 기준은 뭔가요?
박소진 대표 / 강박장애와 강박성 인격장애는 20~30% 정도 공병되기도 하고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장애입니다. 이 장애들의 임상적 양상은 상당히 다른데요. 강박성 인격장애는 강박적 사고나 강박적 행동이 특징적이지 않고 정리정돈, 완벽주의, 통제와 같은 광범위한 양상을 포함해요. 그리고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고요. 강박장애는 자신의 사고나 행동이 비합리적임을 인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강박성 인격장애는 오히려 이런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고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플랜맨>에서도 정석은 자신을 부지런한 사람일뿐이라고 생각하죠. 또 주변 사람들을 게으르고 지저분한 사람들이라고 인식해요. 그렇다보니 치료에도 적극적이지 않고 예후도 좋지 않은 편입니다.
김성일 기자 /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수집벽 같은 증세 역시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봐야할까요?
박소진 대표 / 강박 증상의 일종으로 보고요. 보통 저장강박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불필요한 물건, 가치가 떨어진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하고 너무 쌓아놓아서 위생적으로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양상을 보여주기도 해요.
김성일 기자 / 이런 강박장애, 왜 생기는 걸까요. 여러 관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요?
박소진 대표 / 인지적인 관점에서는 아동기에 어떤 생각들이 위험하고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으로 학습됐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생각은 아주 잘못됐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 행동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졌다는 것이죠. 정신분석적 관점에서는 오이디푸스적 갈등에 의한 불안으로 봅니다. 이 시기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서 성적. 공격적 충동이 자연스럽게 융합되지 못하고 두 충동이 개별화된 항문기로 퇴행해 서로 모순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죠. 또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뇌의 구조적 결함을 원인으로 보기도 합니다. 융통성 없는 반복적인 행동이나 이런 행동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전두엽의 기능 손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플랜맨>의 정석이 강박증 증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일어났던 사건 때문인데요. 영유아기나 소아청소년기의 성장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양육환경에 따라 강박적인 성격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부모의 성격이 지나치게 꼼꼼하거나 완벽을 추구하고자 할 때 아이가 비슷한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요. 영화 <플랜맨>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천재 소년이었던 주인공을 더 잘난 아이로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훈육을 했고, 이런 영향이 주인공을 강박증에 걸리게 한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김성일 기자 / 앞서 살펴봤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도 주인공 멜빈이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죠?
박소진 대표 / 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플랜맨>의 인물 모두 엄격한 부모 아래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운 행동에 제약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양식이 강박장애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강박적인 사고는 성인이 된 이후 점점 고착화 돼 만성적으로 굳어지며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주게 됩니다.
김성일 기자 / 다른 정신장애들과 공존하는 경우도 있을까요?
박소진 대표 / 강박장애는 틱 장애 외에도 다른 장애와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흔히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성 성격장애, 섭식장애 등과 함께 나타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김성일 기자 / 그렇군요. 영화 <플랜맨>의 정석 역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멜빈처럼 누군가를 만나면서부터 변화하기 시작하죠?
박소진 대표 / 네, 배우 한지민이 맡은 여자 주인공 소정은 인디밴드 보컬로 정석의 성격과는 정반대로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입니다. 계획이란 그녀의 사전에 없는데요. 낮에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결국 영화 <플랜맨>은 전혀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죠. 소정은 정석의 상처와 마주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고, 정석에게 삶의 변화를 줄만한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요. 그렇게 정석이 새로운 자신과 만나도록 조력하죠. 시간의 균열과 일탈,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도록 유도하면서 정석은 낯선 세계와 만나게 됩니다.
김성일 기자 / 영화 <플랜맨>에서 전문가의 상담이나 전문적인 치료 장면이 나오는데요. 강박장애가 있으면 스스로 치료의 필요성을 느낄 정도로 불편함이 있을 것 같은데요. 치료를 통해서는 어떤 도움을 받아볼 수 있나요?
박소진 대표 / 약물치료 같은 경우 보통 항우울제 계열의 약들을 씁니다. 더불어 인지행동치료 기법들을 사용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노출법은 내가 어떤 오염에 대해서 크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계속 회피하거나 그것을 상쇄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될 때 단계적인 노출, 또는 홍수법 같이 한꺼번에 노출을 시켜서 그 사람이 견디기 좀 힘들 것 같은 어떤 상황을 만드는 것이고요. 그리고 반응감지법이란 게 있는데, 예를 들어 손을 열 번 이상 너무 많이 씻는다면 손을 안 씻도록 반응을 억제시켜 줍니다. 그렇게 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괜찮다는 것을 본인이 경험하게 하는 것이고요. 옆에서는 계속 격려를 해주면서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치료를 하게 됩니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대개 호전을 보이는데요. 하지만 1~2년 정도의 치료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력을 가지고 꾸준히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김성일 기자 / 네, 강박증은 50명 중 1명꼴로 경험할 수 있는 질환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흔한 질환이라고 할 수 있죠. 강박증 환자들은 단순히 남들보다 불안한 마음이 조금 더 큰 것이고,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영화와 더불어 심리학이라는 렌즈로 마음을 살펴보았던 시간, 마인드 온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함께해주신 박소진 선생님 감사합니다.
박소진 대표 / 네, 감사합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