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인의 뉴스 [데스크 창]

그 노인의 뉴스 [데스크 창]

기사승인 2025-06-20 14:13:58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씨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훈장을 받았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올라온 이미지. 이 이미지는 합성 사진으로 밝혀졌다. 페이스북 캡처

지인이 ‘이것 좀 보라’며 메신저로 사진을 보냈다. 원근법을 과감히 무시한 얼굴 크기, 조악한 이미지 배경 제거, 상황에 맞지 않는 인물의 몸짓. 대화는 웃음을 뜻하는 초성 ‘ㅋㅋㅋ’로 이어져 ‘ㅋㅋㅋ’로 끝났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조작 이미지였다. 이튿날 퇴근길 지하철 안. 피곤한 원숭이처럼 노약자석 앞 손잡이를 잡고 늘어져 있던 내 눈에 문제의 이미지가 다시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이어폰 없이 큰 소리로 유튜브를 보고 있던 한 노인의 휴대전화 안에서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는 내게 면박을 주는 대신, 잘 살펴보란 듯 화면을 들이밀며 말했다. “전한길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았다잖아. 참, 대단하다.”

전직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훈장을 받았다는 내용의 글과 사진이 최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았다. 시작은 강경 보수 성향의 한 SNS 그룹 페이지로 알려졌다. 게시물을 작성한 이는 “처음에는 허풍인 줄 알았는데 전한길 선생님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받은 이 사진을 보고 미국이 그의 배후에 있다는 걸 믿게 됐다”며 “정부는 전 선생을 건드리면 트럼프 대통령과 적이 되는 적을 각오하라”고 했다.

게시물은 쇼츠 영상, 카드뉴스 형태 등으로 재가공되어 SNS, 커뮤니티로 퍼져나갔다. 전씨의 지지자들은 ‘미국이 전씨를 지켜주고 있다’며 반색했다. 이 조잡한 이미지는 결국 외신의 팩트체크 대상이 됐다. 당연히 합성 이미지라는 판명이 났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지난 17일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5’를 공개했다. 매년 세계 주요 국가 뉴스 이용자들의 행태와 인식을 조사해 보고서에 싣는다. 눈길을 끄는 내용 중 하나는 뉴스를 전달하는 인플루언서에 관한 점이다. 신문과 TV 같은 전통 매체를 통해 뉴스를 보던 사람들은 포털사이트로 옮겨갔다.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던 이들은 이제 SNS, 유튜브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처럼 뉴스 소비가 파편화되면서 플랫폼과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개인 창작자에 대한 이용자 의존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에서는 언론사보다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가 더 큰 주목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인플루언서 중심의 뉴스 소비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틱톡을 통한 뉴스 소비 양상을 보면, 케냐에서는 인플루언서와 정치인의 영향이 전통 언론보다 컸다. 

보고서는 미국, 프랑스, 태국 등 일부 국가에서 인플루언서와 유명 인사들이 공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유튜버나 틱톡커 등 1인 미디어에 백악관 출입과 취재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사례만 보더라도 이들이 여론 형성의 한 축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물론 그 영향력이 언제나 올바른 방향이라는 뜻은 아니다.

많은 이용자가 기존 언론보다 개인 창작자의 콘텐츠에 더 귀를 기울이는 건, 뉴스의 본질보다는 해석과 맥락에 끌리기 때문이다. 현재의 플랫폼에서는 정보 그 자체보다 감정적 몰입과 개인적 정체성이 강조된다. 뉴스는 누가 전하느냐에 따라,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수용 방식이 달라진다. 정보는 중개자들이 선택한 표현과 관점 그리고 감정이 얹혀 재가공된다. 수용자는 이 재가공된 뉴스에 더 쉽게 설득되고, 오랫동안 반응한다. 정보를 전달하는 중개자들의 역할이 이래서 중요하다. 

인플루언서 기반의 정보 유통 구조는 사실 여부보다 확신이 먼저 유통되는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5에 따르면, 전 세계 응답자의 47%가 허위·오도 정보의 최대 위협으로 정치인과 더불어 인플루언서를 꼽았다. 신뢰보다 공감, 검증보다 속도에 무게가 실린다. 허위 정보나 왜곡된 사실이 더 빠르게 확산한다. 팩트체크에 시간이 걸리는 사이, 알고리즘은 이미 그들의 신념을 강화할 다음 콘텐츠를 추천한다. 언론이 아무리 정확한 정보를 내놔도, 이미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에겐 닿기 어렵다.

이런 식의 뉴스 소비는 계속될 것이다. 한 사람의 의도나 해석에만 의존하는 정보 수용을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 지금까지 언론이 정보의 소유자로서 권위를 지키려 했다면, 이제는 수용자와의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 수용자 역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가려볼 수 있는 감각을 키워야 한다.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멈춰서 의심하고, 사실을 확인하고, 스스로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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