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MBTI. 네 자릿수 지표에서 두 번째 척도는 감각(S)과 직관(N)을 나타낸다. N 성향의 사람들이 상상력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지금껏 ENFP(외향적이고, 직관적이며,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유연한 대처를 선호하는)로서의 본분에 충실해 왔다. 커피잔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계단을 오를 땐 발을 헛디뎌 공중제비를 도는 상상을 한다. 머리를 감을 땐 지금, 이 순간 단수가 된다면 어떤 것을 이용해 비누 거품을 헹궈낼 것인지 갖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이야기 속 여러 인물의 삶을 머리로 대신 살았다. 물론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이다.
양을 돌보던 소년이 장난으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달려왔고, 늑대는 없었다. 소년은 웃었다. 같은 거짓말을 반복했다. 사람들은 점점 믿지 않게 됐다.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소년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양은 전부 잡아먹혔다.
소년과 그의 거짓말이 나쁘다는 건 굳이 역설할 필요도 없다. 의문이 든 건 마을 사람들의 행동이다. 처음엔 믿을 수 있다. 공포와 분노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감정이다. 그건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문제는 다음이다. 두 번째, 세 번째 거짓말에도 마을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았다. 소년의 외침에 이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몇 번이고 달렸다.
현재 우리는 어떤가. “윤석열 지지자면 같이 싸워라.”, “들어가서 빨갱이 판사를 끌어내야 한다.”라는 자극적인 말들이 순식간에 여론이 된다. 확인하지 않은 영상에 사고와 선택을 의탁하고, 화면 너머 들려오는 키질에 동조한다. “국민 저항권이 최고이므로 우리가 대통령을 서울구치소에서 강제로 모시고 나와야 한다.”, “헌법 재판관이 자진 사퇴를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헌재를 휩쓸 것”이라는 선동이 거리를 채운다. 책임 없는 말들이 광장을 떠돌고, 사람들은 환호한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실제 그가 이 같은 말을 했다는 명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라이히스탁 방화 사건이나 유대인 혐오 선전 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선동은 무분별한 동조를 얻을수록 더 강해졌고, 그 끝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 누군가 직접 언덕 위를 올라가 들판을 살폈다면, 늑대는 언제 나타나고 어떤 소리를 내며 어떻게 접근하는지 공부했다면,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 거냐며 소년에게 따져 물었다면, 앞으로는 반드시 주장에 따른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고 규칙을 정했다면, 선동을 반복하는 이유를 함께 고민하고 시스템을 만들어 대처했더라면 결말은 달랐을 것이다.
지금도 유튜브, SNS, 커뮤니티, 광장에서 누군가 위험이 임박했다고 외치고 있다. 당신은 어떤가. 여전히 늑대를 쫓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