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안해서합니다] "맥북에 거위털 이불 필수"... 브이로그, 나도 찍어봤다

[아무도안해서합니다] "맥북에 거위털 이불 필수"... 브이로그, 나도 찍어봤다

기사승인 2021-04-16 06:20:02

[쿠키뉴스] 최은희 인턴기자 =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근황을 묻던 중 친구가 불쑥 말을 꺼냈습니다. “나 요즘 브이로그(Vlog·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 찍어. 구독, 좋아요 좀”

브이로그가 인기이긴 한가 봅니다. 일기를 쓰듯 소소한 일상을 담은 영상에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겁습니다.

구글에서 ‘일상 브이로그’를 검색하면 약 213만개의 영상이 나옵니다. ‘직장인 브이로그’, ‘알바 브이로그’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조회 수가 높습니다. 잘 나가는 브이로거 구독자 수는 몇십만 명을 웃돕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브이로그를 찾아보다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브이로그 특징.

네티즌이 누른 ‘좋아요’ 수는 무려 2300개. 어떤 내용인지 살펴봤습니다. ‘잘 정돈된 산뜻한 침대에서 알람 소리를 듣고 어색하게 일어남(거위털 이불 필수)’, ‘주방으로 가서 식빵 토스트기에 넣고 버터 발라줌. 아보카도 썰어서 올리고 반숙 계란후라이 올리기(돌려서 뿌리는 통후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정형화된 패턴이 있다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비슷한 브이로그들을 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브이로그는 일상과 얼마나 닿아있을까요. 먼저 ‘브이로그 특징’을 그대로 따라 영상을 찍어 봤습니다. 과정은 순탄치 않습니다. 아보카도, 통후추, 달걀 등 준비물 사는 데만 꽤 많은 돈이 들었습니다. 수중에 없는 제품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맥북, 거위털 이불, 네스프레소 커피머신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인턴기자는 엄두도 못 내는 사치품들입니다.

하얀 파자마를 입고 거위 털 이불에서 일어납니다. 평소에는 신지도 않는 실내화가 어색하기만 합니다. 아보카도 토스트 만들기는 몇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선배에게 빌려온 커피 머신 사용법을 몰라 헤매기도 했죠. 혼잣말로 요리 과정을 설명하다가 어색함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꾸미지 않은 ‘날것’의 영상도 찍어 비교해봤습니다. 영상 속 기자는 후줄근한 차림에 코까지 골며 잡니다. 알람 소리에 깨지 못합니다. 3번째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겨우 눈을 뜹니다. 일어나서는 곧바로 화장실에 갑니다. 하품을 쏟아내며 말이죠. 침대 정리도 뒷전입니다. 시간이 부족해 앞머리만 감습니다. 아침 식사는 고사하고 옷을 고를 여유조차 없습니다. 전날 입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집을 나섭니다.

두 영상을 비교해봤습니다. 브이로그 영상은 마치 형광등 백 개를 켜놓은 것 같습니다. 여유롭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서일까요. 자꾸만 보게 됩니다.

한 가지 걸리는 건, 허구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영상을 찾아보는 네티즌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브이로그 컨텐츠가 끊임없이 인기를 끌고 제작되는 이유는 뭘까요?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보통 타인의 경험을 통해 본인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낀다”며 “바쁘고 고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 시청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브이로그 열풍은 여전합니다. 그 이면에는 여유로운 일상과 힐링을 바라는 현대인들의 소망이 담긴 것 아닐까요.

hoeun2311@kukinews.com 
영상제작=박시온 PD
최은희 기자
hoeun2311@kukinews.com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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