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사람도 믿을 수 없는 ‘내일의 기억’ [쿡리뷰]

기억도, 사람도 믿을 수 없는 ‘내일의 기억’ [쿡리뷰]

기사승인 2021-04-17 07:00:12
영화 '내일의 기억' 스틸컷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기억이 나지 않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뤘던 것 같다. 눈 앞에 이 사람이 남편인 것 같다. 곧 캐나다로 떠나기로 한 것 같다.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의 불길한 미래가 환영처럼 스치는 것 같다. 누구보다 자상한 남편은 안심하라고 말하지만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다. 누구를,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내일의 기억’(감독 서유민)은 사고로 기억을 잃은 수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수진은 길에서 마주친 이웃들의 위험한 미래가 보이자 혼란에 빠진다. 우연히 만난 직장 동료는 남편 지훈(김강우)이 해준 적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훈의 직장에 찾아갔더니 이미 부도가 나서 사무실이 비어있다. 건축 자재 도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사건 당일 공사장 인근에서 지훈의 행적을 발견한다. 수진과 지훈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내일의 기억’은 독특한 심리적 트릭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 끈다. 과거 기억을 잃은 여성이 미래를 보는 설정이 핵심이다. 제목의 아이러니가 의미하듯 불안정한 주인공의 기억과 환영해 의지해 이야기의 전후를 파악해가는 과정이 신선하다. 지나치게 꼬아서 어렵게 만드는 대신, 하나씩 단서를 풀며 친절하게 관객들을 올바른 길로 유도한다. 중반부터 반전을 통해 서사를 완전히 다르게 뒤집는 방식으로 끌고 가는 힘도 눈에 띈다.

영화 '내일의 기억' 스틸컷

스릴러로 시작해 멜로로 향하는 영화의 방향성은 자칫 갈수록 힘이 빠지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모든 걸 의심하는 심리 스릴러에서 인물이 느끼는 감정에 몰입하게 하는 전환이 매끄럽지 않다. 영화의 형식은 세련됐지만, 근본에 깔린 정서와 서사는 낡은 느낌도 든다. 현실적이지 않은 과장된 사건들과 분위기도 몰입을 방해한다.

영화 개봉 시점과 맞물린 배우 서예지를 둘러싼 논란도 영화 감상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누구인지 주체적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가는 수진과 수진을 연기하는 현실의 서예지가 번갈아 보인다. 김강우가 홀로 분전하지만, 주인공 서예지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

오는 2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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