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시지프스 : the myth(2021)’와 희망(希望)

[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시지프스 : the myth(2021)’와 희망(希望)

정동운(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기사승인 2021-05-05 23:07:05
정동운 전 대전과기대 교수
<시지프스(2021)>는 JTBC에서 2021년 2월 17일부터 4월 8일까지 수․목요일 밤 9시, 총 16회에 걸쳐 방영된,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평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희망의 힘’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드라마다.

미래(2035년),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거의 없는 오염화된 사회다. 어머니 이은희가 전쟁으로 죽은 후,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 강동기로부터 철저하게 전사로 키워진 강서해(박신혜). 서해는 성공 확률 5%라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현재(2020년)로 돌아가 ‘업로더’(타임머신)를 만든 퀀텀앤타임 대표 한태술(조승우)를 구함으로써, 전쟁을 막고자 한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시그마(악의 화신)의 손 안에 있는 적대적인 사람들에 의해 온갖 고통을 겪는다. 즉, 단속국 국장 황현승, 아시아마트 박사장, 정신과 의사 김서진, 단속국의 음모에 빠진 정현기까지 한통속이었다. 여러 차례 현재로 왔지만 실패를 거듭했던 서해와 태술의 모습은, 신에 의해 형벌을 받는 ‘시지프스’와 닮아 있다. 산위로 바위 돌을 굴려 올라가면 산 밑으로 다시 떨어지므로, 또 다시 그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시지프스의 고통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반복된다는 의미다. “만약에, 만약에 우리가 지면?”(태술) “다음 세상에서 다른 우리가 다시 시작하겠지. 한 번 할 때마다 한 발씩만 가면 돼. 이미 많이 와 있고, 이번에도 한 발짝 더 갈 거야. 그렇게 가다보면 이길 수 있어. 포기만 안 하면 돼. 그러니까 도망치면 안돼.”(서해) 이 대사와도 같이, 수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희망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업로더를 사용하여 가장 가까운 과거로 돌아간 태술과 서해는 시그마를 살해하지만, 퀀텀앤타임 공동대표 에디김이 배신한다. 태술은 서해에게 자신을 만나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하고, 미래의 서해도 사라진다. 비로소 전쟁을 막고 서해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희망찬 미래를 맞게 된다. 물론, 태술의 형 한태산, 서해를 좋아하는 중국집 직원 썬, 태술의 경호원 여봉선의 도움이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평화를 위한 희생양이 된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을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라고 정의했다. ‘에스페란스’는 라틴어로 ‘희망’을 뜻한다. 인간은 희망을 가지는 존재이며, 희망을 먹고 산다는 뜻이다. 루터는 희망을 정의하여 “강한 용기요, 새로운 의지”라고 했다. 희망은 우리에게 큰 용기를 주고 새로운 의지를 발동시키는 것이다. 희망은 “각성(覺醒)한 자의 꿈”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갈파했다. 희망은 잠자는 자의 꿈이 아니고, 깨어있는 자의 꿈이다.(안병욱, '희망의 철학', 도서출판 아카데미, 1976, pp.117~118 참조). 그러므로 토마스 카알라일의 “인간은 희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에게 희망 외에는 다른 재산이 없으며 인간의 세상은 희망의 공간이다.”라는 말과 같이, 희망은 인간의 유일한 재산이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생각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한 의사가 불평을 했다. “밥,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구. 너랑 나랑은 같은 약을, 같은 양만큼, 같은 스케줄에, 같은 용도에 처방하잖아. 그런데 내 성공률은 22%고 너는 74%잖아. 전이성 암을 치료하는 데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건 도대체 들어본 적도 없다구. 어떻게 된거야?”

“우리 둘 다 에토포시드(Etoposide), 플래티늄(Platinum), 온코빈(Oncovin), 하이드로시유리아(Hydroxyurea)를 쓰잖아, 너는 환자에게 약을 주며 EPOH라고 하지? 나는 거꾸로 HOPE라고 한단 말이야. 통계상으론 암울한 경우지만 그래도 가망이 있다고 강조하는 거지.”라고 대답했다.(윌리암 M. 뷰치홀쯔, “희망”, 잭 캔필드 외 저, 김원영 역,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 중에서).

이제 평화가 찾아왔지만, 여전히 시그마는 존재한다. 우리는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끊임없이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숙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면 언제든지 강서해가 한태술을 다시 찾아와, 둘이 합심하여 어려움을 해결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가장 큰 고통 속에서 ‘희망’이라는 기적을 쓴 <시지프스(2021)>는 언제나 변함없이 좋은 친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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