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최근 서울대학교병원이 진료보조인력(PA·Physician Assistant)을 임상전담간호사'(CPN·Clinical Practice Nurse)로 양성화하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의료계 내 논란이 커지고 있다.
PA는 우리나라 의료법상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병원에서 존재하는 직역이다. 대개 간호사 위주로 구성되는 PA는 의사는 아니지만, 처방·의무기록 작성·시술·수술 등 의료법상 의사가 해야 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의대 정원 감축, 전공의 특별법 시행 등으로 부족해진 의사 인력을 대신해 실질적인 의사업무를 맡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올해 4월 전국 50여개 병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따르면 전국 26개 국립대병원·사립대병원에서만 간호사 1680명이 PA로 일하고 있고 PA 간호사가 100명 이상 일하는 병원은 15.4%에 달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대학교병원에서 PA를 임상전문간호사(CPN)으로 양성하겠다는 계획임이 알려졌다. 지난해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PA 문제에 대해 정부가 적극 양성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지난해 국감에서도 나온 내용으로, 정립의 필요성을 느껴 준비하는 과정”이라며 “논의는 진행 중이지만,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것은 아니다. 검토가 더 필요한 사안으로 대략적인 로드맵도 나오지 않았다. 확정된 게 아니므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해당 소식에 즉각 반발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불법 PA 의료행위는 의료인 면허체계의 붕괴, 의료의 질 저하, 의료분쟁 발생 시 법적 책임의 문제, 전공의 수련 기회 박탈, 봉직의사의 일자리 감소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커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불법 PA 의료행위가 근절되지 않았던 이유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불법 PA 의료행위 근절을 위한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와중에 서울대병원이 PA를 임상전담간호사라는 용어로 대체하고 양성화하기로 했다. 이는 공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대병원이 현재 법적으로 불법인 행위를 공공연히 하겠다고 선언한 어이없는 행태이고, 앞으로 불법인 PA 의료행위를 합법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대병원에 불법적인 PA 합법화 시도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이러한 결정을 주도한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의 즉각 사퇴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김연수 병원장의 불법 행위에 대해 윤리위원회 회부를 통한 징계를 요청한다”고 힘줘 말했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도 “서울대병원이 스스로 의료법을 파괴해 국민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불법 의료행위자에 대한 합법화 시도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의료행위 중 의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자격이 없는 PA에게 맡기자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경시하고, 편의주의에 편성해 진료비 증가를 목적으로 상업주의적 의료 가치를 지닌 일부 의료기관의 이익 창출을 지원하겠다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임상전담간호사’라는 이름으로 둔갑시킨 PA 인정을 통해 기형적인 직역을 탄생시키려는 시도는 대한민국 의료인 면허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태롭게 할 것이 자명하다”며 “서울대병원에서 제기한 PA 인정 시도가 전국의 상급병원으로 확산하면 의료의 파국을 맞을 갈등의 촉매가 될 것.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PA 문제 해결을 위해 전체 의료계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PA 양산과 불법적 의사업무 대리행위의 본질적 문제는 의사 부족”이라며 “지난 2000년 의약분업의 비정상적 산물로 이어진 의대 정원 동결이 지금의 의사 부족 사태와 불법 의료를 양산했다. 의사 인력 확충 없는 개별 병원의 PA 공식화는 실질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복지부는 이러한 상황을 방관해선 안 된다. 서울대병원의 임상간호사 제도운영이 불러온 논란 역시 PA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복지부는 불법의료 근절와 PA 문제 해결,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을 위해 즉각적인 논의 테이블을 마련하고 해법 마련에 전면 나서야 한다”면서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간호협회 등 전 의료계와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서울대병원이 국립대병원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정 위원장은 “국립대병원인 만큼 표준진료·적정진료를 추구해야 한다”며 “병원에 의사가 부족하다면 정부에 예산 증원을 요청하고, 서울대 의대 졸업생들이 병원에 남아서 일할 수 있는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인구대비 의사 수가 부족하다면 의료인력 양성을 고민하는 게 답이다. 서울대병원 경영진이 사기업처럼 운영하고 있다. 의료기관의 역할에 충실해달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해 김연수 병원장이 정부의 의사 증원정책에 반대해놓고 PA를 양성하자는 건 경영자의 관점에서 ‘땜빵’식 처방에 불과하다”며 “대한민국 보건의료제도에 무슨 도움이 되나. 공공의료 사업은 뒷전에 두고 국가 세금으로 헛짓거리나 하는 꼴이다. 국민건강에 어느 정도 이바지 되는지, 의료 질에는 문제가 없는지 논의 과정 없이 일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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