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은빈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조국 사태의 수렁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양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지만, 당 안팎의 역풍에 흔들리고 있다. 차기 대선을 목전에 두고 악재를 털고 가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이번 사과가 민주당의 앞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국 사태,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할 문제”
송 대표는 취임 한 달이 되는 지난 2일 조국 사태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이번 사과는 지난 2019년 10월 당시 이해찬 대표의 사과에 이어 민주당 대표로서 두 번째다.
송 대표는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회’에서 “자녀 입시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조 전 장관도 수차례 공개적으로 사과했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할 문제”라며 “민주당은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들에게 상처를 준 사건이라고 짚었다. 그는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지위, 인맥으로 서로 인턴을 시켜주고 품앗이하듯 스펙 쌓기를 해주는 것은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송 대표의 사과는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됐던 조국 사태에 관한 부담을 덜어내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번 지도부의 중책인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4.7 재보궐선거 때 등 돌린 청년들의 민심을 달래야 하는 상황에서 ‘조국 사태’는 커다란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사건은 청년층에게 불공정의 상징으로 인식된 바 있다.
“사과 아닌 사과” “조국 죽이기”
그러나 송 대표의 사과를 바라보는 당 안팎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민주당 권리당원 및 정책제안 게시판에는 송 대표 사퇴 요구가 빗발쳤다. 게시판에는 “사과를 왜 하냐. 제발 당원들 말에 귀 기울여달라”, “명분 없는 조국 죽이기”, “0.59% 차로 당선된 ‘쩜오 대표’는 당장 물러나라”라는 글이 올라왔다.
심지어 ‘송 대표 자진 하차! 안 하면 탄핵’이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SNS에는 ‘#송영길_사퇴해’라는 해시태그도 등장했다.
친문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공개적인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골라 패도 정도가 있지 너무 심하다. 당까지 나서 부관참시도 아니고 밟고 또 밟아야 하겠나. 그러면 지지도가 올라가나”라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김용민 민주당 최고위원 역시 3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왜 그 시점에 사과성 발언을 했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다”며 “제3자인 당이 조국 전 장관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는 것은 잘 맞지 않는 부분”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반성문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3일 신동아에 기고한 칼럼에서 “하나마나한 사과를 한 것”이라며 “그 사과의 변조차도 자세히 뜯어보면 조국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여전히 그의 불법을 옹호하고 변명하는 내용이다. 결국 당 대표의 사과가 정확히 조 전 장관이 쳐준 가이드라인에 얌전히 머물러 있다”고 일갈했다.
사과 끝, 윤석열 겨누는 與의 칼
민주당은 이제 조 전 장관과는 선을 긋고 민생에 전념한다는 입장이다. 송 대표는 공식 사과한 다음날 “민주당과 조 전 장관은 이제 각자의 길로 가야 한다. 어제부로 민주당에서 조국 문제는 정리됐다”며 “이제는 민생으로 가야 한다. 조국의 시간이 아닌 민생의 시간”이라며 논란을 매듭 지으려 했다.
여권의 주요 대선 주자들은 송 대표의 사과에 호응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일 JTBC인터뷰에서 “당원으로서 당대표, 현 지도부의 입장을 존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2일 페이스북에 “조 전 장관이 ‘나를 밟고 전진하라’고 한 것처럼 민주당은 다시 국민 속으로 전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 역시 3일 간담회에서 “조 전 장관 관련 송 대표 발표를 존중한다”고 했다.
이에 송 대표 사과에 관한 여파는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당내 반발이 조금씩 잦아드는 모양새다. 송 대표가 공식 사과할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관한 발언이 친문계 반발을 달랬다는 평가도 나온다.
송 대표는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수사의 기준은 윤 전 총장의 가족비리와 검찰가족의 비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전 총장의 장모 관련 의혹을 겨눈 것이다.
송 대표의 발언이 윤 전 총장의 공세의 신호탄이 됐다. 민주당은 조국 사태와 윤 전 총장의 가족 의혹을 동일선상에 놓고 ‘윤로남불’이라며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4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새아침’에서 윤 전 총장 측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도를 넘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조 전 장관의 부인, 아들, 딸, 그 어머니의 아버지, 동생 등 온 집안을 탈탈 털지 않았나. 잘못이 있으면 수사하라고 나와야지 도가 넘었다고 얘기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날을 세웠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10원짜리 지폐에 윤 전 총장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4일 페이스북에 올렸다. 윤 전 총장이 ‘장모는 사기를 당했지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준 적 없다’는 식으로 발언한 것을 비꼰 것이다. 정 의원은 “평생을 살면서 남에게 10원짜리 한 장 피해를 주지 않고 산 사람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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